TV에 사극 열풍이 재현될 조짐이 보입니다. <무사 백동수><광개토대왕> 그리고, <계백>까지...
정통역사극인 <광개토대왕>도 재밌게 보고 있고, 살짝 코믹화 된 <무사 백동수>도 재밌습니다.
두 편의 사극만으로 비교를 하자면 무게감이 있는 <광개토대왕>이 제 취향에는 맞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이지만 실존 인물들이고 또 어떻게 해석이 되느냐에 따라서 사극은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일례로 영화 <황산벌>을 통해서 '계백'은 박중훈의 코믹스러움으로 되살아나곤 했었지요.
하지만, <삼국사기>에 기록된 '계백'의 모습은 드라마 <계백>의 모습에 더 가깝지 않겠나 싶습니다.
백제 말기의 장수이고, 황산벌 전투의 패장, 나라의 운명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한 비운의 장수로써 말이죠.
<황산벌>에서도 나오지만 '계백'은 전장에 나가기 전 자신의 처자식을 죽이는 비장한 각오의 장수입니다.
"한 나라의 군사로 당과 신라의 대군을 상대해야 하니, 국가의 존망을 알 수 없다. 처자식이 포로로 잡혀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 살아서 모욕을 당하느니 죽는 것이 낫다."
또한, 5천의 군사로 5만의 나당연합군과 맞써 싸우며, 다음과 같은 말로 군사들을 독려한 장수이기도 합니다.
"옛날에 월왕(越王) 구천(句踐)은 5,000명의 군사로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70만 대군을 무찔렀다. 오늘 각자 분전하여 승리를 거두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라"
-출처: 위키백과사전
역사란 승자에 의해 기록이 되기 때문에 계백의 인물평에 대해서도 찬반 양론이 갈리는 편입니다.
처자식을 죽인 잔인한 일면이나, 5천의 병사로 5만의 군사와 맞써는 무모함 등 말이죠.
영화 <황산벌>에서도 그렇고, <삼국사기>에서도 황산벌 전투의 계백이 이끄는 5천의 병사들은 '결사대'로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결사대는 '죽음을 각오한 군대'라는 의미입니다.
리뷰를 하기 위해서 위키백과사전 등을 더듬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과연 '계백이 황산벌 전투를 임함에 있어서 질 것을 미리 예상하고 전투에 임했을까?'
당시의 삼국의 역학 관계를 살펴보면 백제는 고구려와 연합하여 신라를 자주 핍박한 나라였습니다.
신라와 싸워 성을 빼앗을 만큼 말이죠.
헌데, 당나라가 끼어들면서 상황이 역전이 됩니다.
<계백> 첫 회부터 예고가 되고 있지만, 왕족과 귀족의 갈등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700 여년에 가까운 백제가 무너지는 것은 나당연합군에게 패전한 것도 크지만 백제 내부의 갈등이 자초한 면도 클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계백>을 통해서 백제의 비장한 영웅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위정자들의 부정과 부패 등 내부적 갈등을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드라마 <계백>은 계백의 최후의 전투인 황산벌 전투에서 시작을 합니다.
요즘 사극은 대부분이 공성전인데, 영화에서나 봄직한 이런 황산벌 전투를 드라마에서 보게 되니까 흥미진진하더군요.
첫회는 무왕(최종환 분)이 서동요로 선화공주(신은정 분)를 얻어 자신의 첫 왕비로 삼고, 둘째 왕비인 사택비(오연수 분)가 신라 출신의 선화황후와 그녀의 소생인 의자왕의 정통성을 명분으로 내세워 차기 왕위를 둘러싼 음모와 암투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갈 주요인물들의 등장과 스토리의 갈등 구조를 보여주고 있지요.
사택비의 배후에는 귀족 세력과 함께 위제단이라는 자객 집단으로 보이는 비밀 집단이 있는데, 이 위제단으로 선화와 의자왕을 암살하려고 시도를 합니다.
하지만, 무진(차인표 분, 계백의 아버지)이라는 호위무사가 있어 번번히 실패를 하고 맙니다.
<무사 백동수>에는 전광렬이 있다면, <계백>에는 차인표가 있는 셈이라고 할까요.
예고편에서도 보여줬던 존재감이 1회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위제단의 잦은 출몰에 대비하여 부러지지 않는 명도(名刀)를 갖기 위해 대장간을 찾은 무진은 바라던 명도를 갖게 되지요.
(참고로 도(刀)와 검(劍)의 차이는 도는 무겁고, 한 쪽에만 날이 있으며, 주로 베고 부수는 용도로 쓰이며, 검은 가볍고, 양날이며, 찌르는 용도로 쓰입니다.)
명도를 가지게 된 무진은 무협영화에서나 볼 법한 액션과 근육질의 상반신을 선보입니다.
그리고 위제단의 월궁 침입에 맞써서 활 없이 화살로만 적을 죽이는 고수의 면모를 유감 없이 발휘하지요.
"첫 날부터 너(명도)에게 피맛을 제대로 보여주겠구나."
무왕은 위제단의 잦은 암살 획책이 궁 내부의 세작(간첩)에 의한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귀족의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고 왕권이 약하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는 인물이죠.
그렇기 때문에 선화와 의자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의자(백제의 마지막 왕)에게 태자를 봉하려던 생각을 표면상으로는 감추게 됩니다.
무왕이 자신을 둘러싼 정세를 파악하고 있듯이 사택비도 무왕에 못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택비는 무왕의 왕권에 대적할 만큼의 든든한 귀족 세력의 배후도 지니고 있지요.
이 시기의 백제에는 신라의 화백회의처럼 정사암회의라는 귀족회의가 있었는데, 무왕도 이 귀족회의에 의해 추대가 된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선대왕들이 1년도 못되어 승하하신 이유가 병약한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 왕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1회에 그려진 사택비라는 인물은 무왕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백제의 피가 아닌 선화와 의자를 차기 왕권에 옹립할 수 없다는 신념을 지닌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선덕여왕>의 미실처럼 정치적 권력에 대한 야망을 지닌 인물은 아닌 듯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뜻에 반하거나 걸림돌이 되는 인물들을 핍박하는 잔인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 듯 합니다.
무진과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택비는 무진 때문에 번번히 선화황후와 의자의 암살에 실패하게 되자 마지막으로 과거를 들먹이며 그를 회유하려 합니다.
"내가 정을 준 사람은 당신 밖에 없어요."
하지만, 머리에 오로지 '충성'이라는 단어 밖에는 없는 무진이 사택비와의 과거의 정에 이끌리지는 않을 것 같네요.
1회 줄거리 끝.
※ 본 포스팅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을 위해서만 사용되었으며, 그 저작권 및 소유권은 MBC에 있음을 밝힙니다.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