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릴 수 없는 시간
세월이 흐른 지금 너무도 그리워 버릇마저도 닮아 버린 한정우에게 만약 떠올리기도 싫은 악몽 같은 그 날 밤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가 하고픈 일은 이수연과 함께 그 장소를 벗어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적어도 이수연과 함께 곁을 지켜주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시간을 되돌릴 순 없다.
너무나 많은 것이 변했고,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 나이에는 지켜주지 못했던 이수연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그리고 그녀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이수연을 닮은 사람을 눈 앞에 두고서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한정우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주었던 악몽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리라.
그 사건이 준 악몽을 인정하고 그녀를 알아보게 되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순수한 첫사랑에 대한 감정이 깨어지게 될지도 모르니까......
순수함은 조금의 티끌도 허락하지 않는다.
한정우의 눈에 순수,그리고 순결 자체였던 이수연이 당했던 그 악몽을 인정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수연이 죽은 것이라고 믿거나 못찾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을테니까.
그래서 한정우는 애써 이수연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한정우는 아직도 순수하고 순결했던 이수연을 계속 찾아 헤메는 것이다.
한정우가 찾고 싶고 보고 싶은 이수연의 모습은 어린 시절 지켜주고 싶고 감싸주고 싶은 그런 이수연일 것이다.
지금처럼 그녀의 곁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녀를 지켜주고 있는 그런 모습은 아닐 것이다.
이수연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한정우를 괴롭히고 싶어서 이수연이 아닌 척 연기를 하며 그녀의 모습이 연상되게 하고 있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 했던가?
만약 윤은혜가 정말로 악몽을 다 잊고 그 악몽 속에 존재하는 모든 기억들, 그 속에 존재하는 한정우마저 깨끗하게 지웠다면 이럴 이유가 없다.
한정우를 괴롭게 하고 싶어하는 마음, 어찌보면 장난을 치고 있는 이수연의 마음은 모두 한정우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한정우는 이수연에게 그 날 혼자 도망가려 한 것이 아니었다고, 꼭 돌아와서 구해주려 했었다고 그렇게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면 될 터이다.
이수연도 니가 떠나서 너무 무서웠다고, 왜 혼자 도망갔냐고 가슴을 치며 따지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날 이후로 그들을 지켜주던 믿음과 순수가 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는 큰 상처가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트라우마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과연 그럴까?
한정우와 이수연은 정말 그 날의 모든 걸 잊은 것일까?
아니다.
둘은 아직도 그 날의 악몽 속에 갖혀 있다.
그리고 그 마음 속에 있는 그 날이 준 상처는 아직 완쾌되지 않았다.
이 상처는 둘의 재회로도 쉽게 치유될 리 없다.
순수지향적인 학창시절과 냉혹한 현실 사이의 괴리감......
지켜주지 못했던 어린 한정우와 지켜줄 정도로 커버린 한정우만큼이나 크다.
커져버린 괴리감을 형사가 된 한정우가 이수연을 찾게 되면, 범인을 잡게 되면 좁혀질 수 있을까?
그렇지만 이제 그마저도 할 수 없다.
범인은 이미 죽어 버렸으니까.
이 범인을 죽인 용의자가 누구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한정우와 이수연, 그 가족들은 맘 속으로는 수백 번, 수천 번 그를 죽였을테니까.
그러나 극의 흐름상 이 범인을 죽인 용의자는 매우 중요하다.
'보고 싶다'의 숨겨진 반전코드니까.
맘 속에 상처를 가지고 있고 범인의 얼굴조차 똑바로 보지 못하고 경기를 일으키는 이수연이 범인일까?
이수연을 찾으려 두고두고 괴롭히던 한정우가 미친토끼마냥 이성을 잃고 죽였다고?
그럼 누굴까?
반전이 성립되려면 전혀 의외의 인물이어야 한다.
가장 유력한 사람은 김은주(장미인애분)라 생각된다.
뭐 틀려도 크게 상관은 없다.
추리에는 정통하질 못하니까.
필자가 관심 있는 것은 한정우와 이수연이 트라우마를 지닌 채로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가...아니면 용서와 화해를 통해 못 다 이룬 사랑을 이루는가에 있다.
'보고싶다'는 성범죄에 대한 사회고발적인 측면도 있는데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이 새드엔딩으로 끝나는 것을 반대한다.
왜냐하면, 트라우마를 지닌 채 새드엔딩으로 끝나기 보단 이를 극복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이 보다 의미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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