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의 의미를 되새김질 하는 듯한 미장센
책을 읽다보면 글자와 글자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 그리고 행과 행 사이의 행간에도 그 글이 주는 미묘한 느낌과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어떤 글을 읽으면 그 글이 좋아서 몇 번씩 되뇌이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이런 비유를 하는 것이 적당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칼과 꽃> 1회와 2회를 시청한 느낌은 바로 그것에 비유될 만한 영상의 미학, 즉 미장센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칼과 꽃>이 시도하고 있는 이런 미장센은 아날로그 tv시대에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배우의 눈빛, 그리고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는 HD TV 시대이므로 가능한 것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배우들의 대사를 절제하고 영상을 통해서 그를 대신하여 내면연기를 유도하는 것 또한 연출이 의도한 것이라 보여지는데,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칼과 꽃>은 작품성 만큼은 갑이란 생각이다.
그 행간 사이의 침묵 속에는 <칼과 꽃>이라는 극의 제목처럼 민족의 방파제 역활을 하였던 고구려의 긴박한 상황도 느껴질 수 있겠고, 말이 없이도 서로가 서로에게 끌리는 로맨스도 있을 수 있겠다.
필자도 글로써 그러한 감정이나 상황 묘사 등을 표현하는데 한계를 느끼고 있는데, 어찌 생각하면 말이나 글보다도 차라리 침묵이 때로는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생각될 때가 있는데, <칼과 꽃>은 그런 말과 글로 표현되어지는 한계를 영상의 미장센으로써 표현하여 그 한계에 도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칼과 꽃>은 예전의 <공주의 남자>와 같이 원수의 집안끼리의 사랑과 그를 둘러싼 정치적·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하고 있는 작품이다.
한마디로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극을 잉태하고 있는 로맨스란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다 아는 진부한 이야기(클리쉐)로 속단하기엔 이르다.
<공주의 남자>가 그랬듯이 모두가 한번은 들어본 진부한 이야기 속에서 시청자가 얼마나 그 작품 속에 몰입하게 만드느냐에 따라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몰입에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주연 배우의 매력도에 판가름이 날 수 있는데, 연개소문의 서자인 연충(엄태웅 분)과 영류왕의 딸, 공주 역의 김옥빈은 충분히 매력 있는 캐릭터들이라고 보여진다.
그리고, <공주의 남자>의 성공 요인 뒤에는 이런 류의 '운명적 사랑' 자체가 갖는 판타지성을 이야기 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랑 자체가 갖는 판타지를 시청자들에게 충족시켜주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칼과 꽃>도 그런 면에서 보면 <공주의 남자>처럼 비극적 로맨스와 시대적·정치적·역사적 환경이 비슷하다 보여지는데, 로맨스적 이야기와 시대물의 이야기의 균형감각이 대중성을 확보하는데 있어서 주요한 요소가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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