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춘정문어발

ILoveCinemusic 2014. 4. 2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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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춘정문어발

제발 나 좀 봐줘’ 하는, 정에 주린 외롭고 평범한 남자와
‘아, 힘들어!’ 하는, 정을 줄 수 없는 나름의 이유를 가진 여자,
그들이 선보이는 음식 남녀상열지사의 달큼촉촉한 여덟 가지 정(情) 이야기!

매사에 의기소침하지만 먹을 때만큼은 적극적인 남자, 술자리에서는 음흉하지만 막상 들이대면 내숭을 떠는 남자, 소심 대마왕에 뼛속까지 짠돌이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랑스러운 ‘어른 남자들’! 의뭉스럽고, 얄밉고, 때론 경이롭기까지 한 이 남자,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심호흡 한번 하고 다시 바라보니, 지금 내 옆에 있는 바로 그 남자다!

『춘정 문어발』에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하지만 가슴속 한구석에 외로움을 지닌 남자들이 등장한다. 인생의 ‘물기’는 말라버린 채 음식의 ‘물기’만을 의지하기로 결심한 그들은, 까칠한 것 같아도 순둥순둥하고, 고집스러워 보이지만 올곧은 심성을 지녔으며, 평범한 ‘음식’ 하나에 온 마음을 기울여 찬양하는 보통의 남자들이다.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지 못하는 구조로 프로그램화되어,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그저 눈치나 보며 ‘적당히’ 맞춰주는 삶을 살아온 그들은 이상하게도 ‘적당히’ 맞춰줄수록 음식 ‘취향’만은 요지부동 확고해진다. 그들을 바라보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현실적이고 치사하고 말을 함부로 내뱉는 것 같지만, 그녀들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결혼 전부터 꾸준히 다닌 무역 회사에서 남편보다 높은 연봉을 받으며 사회적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여념이 없는 여자, 서른이 넘어 낳은 두 아이를 돌보느라 머리는 산발을 한 채 하루 종일 육아에 매달려 있는 여자, 머릿속은 오로지 전시회에 낼 꽃꽂이 작품으로 가득한 여자 등. 집에 돌아오면서 “아 힘들어.” 목욕을 하고 나오면서 “아 힘들어.” 침대에 파고들면서 “아 힘들어.” 하는 그녀들의 삶도 남자들만큼 고단하고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맛있지만 어딘가 달라…, 어딘가 부족해…’하고 불평하는 건 어쩌면 복에 겨운 투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녀들의 눈치를 보면서 떳떳하지 못하게 즐기는 음식이 더 맛있다니, 진정 이 남자들은 못 말리는 식도락 고수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춘정 문어발』에는 ‘적당히’ 맞춰가며 사는 게 인생의 왕도라고 믿는 남자들이 단 한 가지 포기하지 못하는 별별 색다른 ‘맛’이 펼쳐져 있다. 흥! 하고 무시하다가도, 어? 하고 놀라다가, 아! 하고 감탄하게 되는 그 맛! 아내도, 어머니도 줄 수 없었던 갸륵하고 거룩한 그 맛을 읽다 보면 저절로 침이 꿀꺽, 삼켜지고 ‘역시 인생에는 아직 모르는 맛이 많구나……’ 하고 감탄하게 될 것이다.


첫사랑에 대한 달콤쌉쌀한 설렘부터 옛사랑에 대한 애틋한 아련함까지… …
다나베 세이코표 ‘식탁’ 위에 차려진 ‘도란도란 오물오물’ 정답고 따뜻한 상차림

내가 찜한 그 남자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다면? 그토록 환멸을 느꼈던 전처를 다시 그리워하며 만난다면? 결혼 전에 오래 사귀었던 여자를 보고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말한다면? 갑자기 어떤 여자가 자꾸 이뻐 보인다고 얘기한다면?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 아닌, 중년의 연상녀에게 낚였다면? 모두 『춘정 문어발』에 나오는 남자들의 이야기인데, 다나베 세이코 식으로 말하자면 남자가 변심한 게 아니라 ‘입맛’이 변한 거다!

『춘정 문어발』에는 오로지 음식의, 음식에 의한, 음식을 위한 남자들이 나온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존재 증명’은 이미 포기다. 그들은 오로지 음식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로 결심했다. 주인공 남자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온몸의 세포가 만세를 부르며 백 퍼센트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인생 최고의 별별 색다른 맛을 함께할 ‘푸드 메이트’를 찾겠다고 나선다. 맛있는 건 함께 나누면 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먹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세 끼를 꼬박 챙겨 먹으면서도 밥에 대한 묵념까지는 아니더라도 짧게나마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않는 사람은 사절이다! 밥알 하나에 공경의 마음을 품고, 나만의 어휘와 철학으로 맛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하며, 천천히 그리고 깊이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게다가 ‘희미하게나마 정이 통하는’ 사람이라면 최고의 푸드 메이트가 될 것이다.

“푹 익혀 너무 부드럽지 않고 아마추어 풍으로 탱탱하게 씹는 맛이 살아 있는 문어”, “달콤함이 혀에 살짝 감도는가 싶더니 금세 사라져버리는, 여자의 엷은 정을 닮은 오코노미야키”, “넘실거리는 황금빛 국물의 기쓰네 우동”, “생선도 고기도 아닌 애매모호한 맛이 일품인 고래 고기”, “둘이서 걸어가면서 오독거리는 문어를 살살 혀로 굴려가며 먹는 다코야키”, “부드러운 자국눈처럼 희미한 달콤함을 남기지만, 입안에 감도는 향기로운 포타주 한 방울 같은 복지리” 등 여덟 가지 오사카 대표 음식에는 남녀 사이의 특별한 ‘정(情)’이 흐르고 있다. 이 ‘정(情)’은 첫사랑에 대한 설렘부터 옛사랑에 대한 아련함까지, 그리고 달콤쌉쌀한 맛부터 농익고 담백한 정다운 맛까지, 오색찬란한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에 나오는 음식들은 한상 푸짐하게 차린 만찬이라기보다는, 소박하고 서민적인 음식들에 가깝다. 그리고 그들이 음식 하나하나에 불어넣는 뜨거운 애정과 유별난 정성, 아집에 가까운 고집, 나만의 ‘맛’을 찾아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그 어떤 화려한 고급 요리보다 당신의 쓸쓸한 빈 그릇을 뜨끈뜨끈하게 채워줄 것이다. 맛집 기행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텔레비전 앞에 홀로 멍하니 앉아 밥을 먹거나, 모처럼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누군가와 함께 고급 요리를 먹고 있어도 외롭다면, 이제 당신의 텅 빈 영혼을 채워야 할 시간이다.


행복의 벡터를 올려주는 ‘맛있는’ 음식의 조건 세 가지!
정직한 가격일 것, 무한한 애정으로 조리될 것,
그리고 정(情)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할 것

『춘정 문어발』 속 남자 주인공들은 맛있는 음식을 찾아 헤맨다. 그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통해 얻는 안식은 일종의 구원과도 같다. 지금껏 한눈 한번 팔지 않고 성실한 삶을 살아왔지만, 어딘가 마음속 한구석이 텅 비어 있는 듯한 남자들에게 찾아온 찰나의 순간은 잠시나마 지상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혀가 떨릴 정도로” 강렬한 천상의 기쁨을 누리게 한다. 다나베 세이코가 그려내는 음식에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온기와 정, 우주 만물에 대한 경이로움, 소박하고 겸허한 태도 등이 담겨 있는데, 모두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행복의 다양한 이름들이다.

『춘정 문어발』에서 말하는 행복의 벡터를 올려주는 ‘맛있는’ 음식의 조건 첫 번째는 정직한 가격이다. 「오코노미야키 무정」에 나오는 하나에 무려 이천오백 엔이나 하는 ‘재패니즈 피자’ 같은 오코노미야키는 실격이다. 나비넥타이를 한 셰프 대신 무뚝뚝하지만 인상 좋은 아줌마가 돼지기름으로 지글지글 구워준 오백 엔짜리 오코노미야키에 열광하는 것도 그 이유다. 창호지를 바른 멋스러운 장지문이 달린 오뎅집은 멀리하고(「춘정 문어발」), 요리 전문점 같은 곳에서 먹는 다코야키는 질색이다(「다정 다코야키」). 오뎅집은 “마음 편하고 비싸지 않고 맛있고 너무 쓸쓸하지도 시끄럽지도 않고 품위가 있고 잘난 척하지도 않는 가게”여야 하고, 다코야키는 역시 “포장마차에서 아저씨나 아줌마가 용기에 담아준 다코야키”가 제격이다.

맛있는 음식의 두 번째 조건은 무한한 사랑과 정성으로 조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정 스키야키 이야기」에서 아내가 환상의 ‘스키야키’ 맛을 재현하지 못하는 이유도 음식에 대한 ‘상상의 힘’이 부족해서인데, 이런 상상의 힘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관심, 이해와 사랑에서 비롯된다. 남편 쓰루지는 전 여자친구 유리에가 만들어주는 스키야키를 먹으며 황홀해한다. 물론 연애 때와 마찬가지로 유리에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그녀가 만들어주는 스키야키에만 온통 정신이 빼앗겨 있어 먹을 때마다 원망과 비아냥거림을 듣긴 하지만, 그조차도 그에겐 맛을 더하는 향신료 같기만 하다. 그러나 유리에가 만들어준 스키야키가 맛있었던 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나누고 공감해주는, 희미하지만 정(情)이 통한다고 말할 수 있는 여자와 함께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춘정 문어발』 에 나오는 오뎅이나 기쓰네 우동, 스키야키, 오코노미야키, 고래 고기, 다코야키, 복지리, 흰 된장 떡국은 모두 무한한 애정과 정직한 가격, 정(情)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맛있는 음식이다.

이번 소설집에서 다나베 세이코는 예리한 시선과 유쾌한 감성, 명징하고 담백한 서사를 통해 그녀만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연애 소설의 여왕’ 답게 남녀상열지사의 정조와 음식을 버무려 농익은 필치로 그려내는 작가의 기량은 천의무봉의 경지라 할 만하다. 특히 말하기 어려운, 혹은 말로 번역되지 않은 미묘한 심리를 포착해 폭로함으로써, 특유의 사르카즘(비꼼, 풍자)을 절묘하게 발휘하고 있다. 그녀만의 재기발랄함과 관록이 돋보이는 블랙유머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삶에 대한 작가의 통찰에 가 닿게 된다. 마지막에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정에 굶주린 인간이나, 정에 박정한 인간이나 모두 끌어안고 토닥이는 작가의 따스한 이해와 포용에 맞닥뜨리면서 마치 진하게 우려낸 국물 맛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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