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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전쟁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

ILoveCinemusic 2024. 4. 1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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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전쟁 영화 정보

장르: 다큐멘터리, 역사

감독: 김덕영

 

건국전쟁 평가

이 영화는 전기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위치하면서,

거대한 역사적 사건과 시대의 흐름을 바탕으로

개인의 관점을 복합적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이는 흔히 볼 수 있는 한국의 정치적 영화들이

주로 따르는 단순한 선악 구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정치인이나

정치적 사건을 소재로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피하게 작품을 평가할 때

정치적 성향에 따른 호불호를 낳기 마련입니다.

 

 

특히 이승만이라는 인물은

그의 일생 동안의 공과 과가 분명하며,

정치적 성향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뉘는 만큼,

이 영화에 대한 반응도 분분합니다.

일부는 이 영화를 통해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의 기회로 여기는 반면,

다른 이들은 역사를 왜곡했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어,

평가가 크게 갈리고 있습니다.

 

 

보수우파 평가 진보좌파 평가
대통령 윤석열은 이 영화가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를 포함한 국민의힘의 주요 인사들이 영화 관람에 앞장섰습니다.
이어서 현직 국회의원과 다가오는 총선에 출마할 예정인 인물들까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영화 관람 후기를 연이어 공유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원내대표 윤재옥은 "건국전쟁" 영화의 성공적인 흥행과 호평이 이어지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에서 이 영화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윤 원내대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사실대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왜 더불어민주당에게 불편한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또한, 비상대책위원 박은식은 비대위 회의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붙여진 '친일', '친미', '독재', '런승만'과 같은 꼬리표가 얼마나 부당한 거짓인지 영화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했습니다.
나경원 전 의원도 KBS라디오에서 우리가 받아온 역사 교육과 인식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잡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국방부는 "건국전쟁"에 대한 시민들의 호평을 담은 공식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국민의힘 비례대표이자 역사학자인 정경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켜내며,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고 언급하며, "건국전쟁" 영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건국', '호국', '부국'의 역사를 다시 확인할 것을 권장하는 게시글을 올렸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관람한 영화에 대한 평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서면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이 독재, 부패, 부정선거로 인해 4.19 혁명으로 몰락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추앙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지향하는 정치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독재가 아닌지 물었습니다.
또한, 광복 후 친일파 청산을 방해하고 그들을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삼았던 이승만을 옹호하는 윤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했습니다.
이는 최근 육군사관학교에서 독립유공자 흉상 철거 논란이 발생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더불어민주당은 거짓된 역사가 진실이 될 수 없으며, 민주주의 역사를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프로필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대한민국 1대~3대 대통령

생몰연대: 1875년 3월 26일~1965년 7월 19일

황해도 평산도호부 마산방 삼리 능안골 태생

(현 황해남도 봉천군 성기리)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 카운티 호놀룰루시 카이무키구 마우타네리 요양원 사망

 

이승만 대통령 생애

이승만 전 대통령은 1875년,

고종 12년 황해도 평산에서 이경선,

김해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가족 중 막내로, 3남 2녀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승만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18대손이자,

태종 이방원의 장남 양녕대군의 16대손입니다.

그의 청년기는 배재학당에서의 학업을 통해 신학문을 배우고,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YMCA에서 활동하며 보냈습니다.

 

 

대한제국 시절, 그는 관직에도 있었으나,

고종의 만민공동회와 독립협회 지도자들에 대한 진압으로

5년 7개월간 한성감옥에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러일전쟁 중 사면된 이후,

그는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민영환의 밀사로 미국에 파견되어

한국의 주권 회복을 위한 청원 외교를 펼쳤습니다.

 

한성정부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직을 역임하며,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주로 미국에서 전개했습니다.

광복 이후, 그는 신탁통치에 반대하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주도했습니다.

1948년, 이승만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이후 두 차례 더 대통령직을 수행하며 총 12년간 재임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국제적 승인, 농지 개혁, 초등학교 의무교육 도입,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학교 건립 확대, 평화선 선포 등

중요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6.25 전쟁과 같은 국가적 위기를 관리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치 생활은 발췌 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을 통한

독재적 권력 추구로 인해 국민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1960년 3.15 부정선거가 4.19 혁명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면서

대통령직에서 하야했습니다.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1965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고국에 안장되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

대통령은 현재의 평가가 아니라 역사가 평가를 합니다.

대통령과 같은 고위 공직자의 업적과 정책은

그들이 재임하는 동안뿐만 아니라

퇴임 후에도 역사가 계속 평가할 것입니다.

 

현직에 있을 때는 정치적, 사회적 상황과 여론이

그들의 결정과 행동을 평가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역사가들이 풍부한 자료와

다양한 관점을 바탕으로 그들의 업적과 영향력을 분석함에 따라

더 균형 잡히고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역사적 인물의 유산은 그들의 정책, 리더십 스타일,

그리고 국가와 사회에 미친 영향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되고 평가됩니다.

'건국전쟁'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그 재평가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하여 가장 객관적으로 평가하였다고 생각되는 글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중앙일보의 고정애 기자는 '건국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대해 평가했습니다.
이 다큐는 많은 이들이 내용의 진실성을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선택된 사실들의 나열에 불과하며,
많은 부분에서 맥락이 누락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로는 과대평가되고,
그의 잘못은 축소되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승만 정부가 이룩한 놀라운 성취만큼이나 재난적인 실패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큐는 진실의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럼에도 기자는 이 다큐멘터리를 반가워했습니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 대해
주로 자학적인 내용을 다룬 콘텐츠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상황에서,
김덕영 감독의 "영화계에 좌파가 99.9%"라는 말이 과장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기자는 역사를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눌 문제가 아니라,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다큐멘터리가 끝나갈 때 극장 안에서는 울음소리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를 통해 기자는 "우리, 정상은 아니다"라고 마무리하며,
다큐멘터리가 관객에게 감정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음을 전달했습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매우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인물입니다.

한쪽에서는 그가 독립운동을 이끌고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며

국부로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장기 집권을 유지하면서 학살과 같은

여러 가혹한 행동을 저질렀다며 독재자로 비판합니다.

 

 

이승만에 대한 이렇게 극단적인 평가는

그가 현대사에서 명확하게 한 쪽으로만 정의될 수 없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임을 보여줍니다.

 

이승만은 독립운동가로서의 활약부터

대한민국 초기 형성과 한국 전쟁을 거쳐

4.19 혁명으로 하야하기까지,

대한민국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입니다.

 

 

그의 역사적 행보는 업적과 실책이 교차하며,

그를 평가하기 어려운 거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승만에 대한 대중적 평가는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이미

"외교에는 귀신, 정치는 등신"이라는

문구로 요약되었습니다.

 

이 문구는 이승만이 뛰어난 외교 정책으로

국가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지만,

정치적 통찰력의 부족으로

내부적 문제를 야기했다는 평가를 담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확산과

미국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이런 평가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1979년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바뀌면서 크게 변화했습니다.

운동권과 진보 진영이 그의 역사적 역할을 재평가하면서,

반미사상의 확산과 함께

이승만의 국가 건설 공로까지 부정하는 시각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는 베트남 전쟁, 12.12 군사반란, 5.18 민주화운동 등의 영향으로

반미 정서가 강화된 배경에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이승만이 미국과의 관계를 통해

반민특위 해산과 친일파의 국내 득세를

조장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그의 독립운동 업적마저 폄하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승만을 종미파, 친일파로 보는 시각도 이 시기에 나타났습니다.

 

 

해방 전후사에 대한 재인식을 다룬 출판물이 나오면서,

그 저자 중 일부가 이승만의 역사적 이미지를

미화하는 데 앞장서는 뉴라이트 진영으로 나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는 뉴라이트가 보수 세력 내에서 점차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는 이승만에 대한 긍정적 재평가를 넘어,

그의 독재와 학살을 정당화하거나 왜곡하는 등

극우적 행보를 보이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대립은 이승만 연구가 단순한 학술적 노력을 넘어

사상적, 정치적 대결의 장으로 확대되게 했으며,

이승만에 대한 평가를 극단적으로 나누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로 인해 중립적인 시각으로

이승만을 평가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보수 진영에서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입니다.

군부 독재 정권이 끝나고

운동권 중심의 역사 인식이 대세를 이루던 시기,

일부 보수 언론은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 운동에 착수했습니다.

이 중 조선일보 방우영 회장은 '이승만과 나라 세우기'라는 특별전을 기획했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이 전시를 방문하면서 역사학계에서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 사건은 이승만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평가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 중 하나입니다.

이승만을 재평가하는 움직임은

순수한 학문적 접근만이 아니었으며,

이에는 운동권에 대항하는 보수 세력과 뉴라이트가 포함되었습니다.

 

이들은 이승만이 근대민족국가의 기초를 다지고,

박정희가 이를 이어 받아 발전시킨 후,

김영삼 정부에서 문민정부로의 전환을 통해

완성되는 단계적 발전론을 주장했습니다.

 

뉴라이트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비판은

관련 문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김대중 정부는 역사적 화해를 목적으로 박정희 기념관 건립에 착수했고,

1992년 12월에는 이승만 동상 건립 안건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이 안건에 반대했던 인물 중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이었으며,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보도연맹학살사건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는 이후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일시적으로 주춤하였으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쳐

윤석열 정부에서는 이승만 기념관 논란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1990년대 이후에는 이승만에 대한

학문적인 긍정적 또는 부정적 재평가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대표적으로 남침유도론의 폐지가 있으며,

정병준 교수는 2006년에 출간된 "한국전쟁: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에서

북한 노획 문서, 소련 문서, 남한 문서를 참고하여

한국전쟁의 형성 과정을 객관적으로 기술하였습니다.

 

이는 해방정국과 이승만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 중요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2000년대 이후로도,

이승만 시대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재평가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상적 대립이 심화되면서,

많은 역사학자들이 긍정적 또는 부정적 재평가 논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새로운 역사적 사실의 발견을 억제하고,

이미 발견된 사실이나 사료를

왜곡, 조작, 미화하는 소모적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론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그의 방대한 업적과 복잡한 인물상으로 인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종종 단순화되거나 일반화된 접근이 우세해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그의 과오는 과장되기 쉽고,

공헌은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평가할 때는

그의 과오와 공헌을 각각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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