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262번째 이야기>
장르: 미스터리, 로맨스/멜로 (2013)
러닝타임: 95분
감독: 임경수
출연: 강신성일, 배슬기, 유태웅
이지데이 시사회
관람장소: CGV 왕십리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야관문: 욕망의 불꽃, 배슬기 진실과 욕망의 문을 연 독화(毒花)
배슬기는 '야관문: 욕망의 불꽃'(이하 '야관문')이라는 작품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네티즌들의 많은 지탄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야관문'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한다 볼 수 있는 영화 평점이 매우 낮은 것을 볼 수 있다.
무대인사 예정이 없던 시사회였음에도 배슬기와 감독이 무대인사를 하면서 공을 들인 '야관문'은 말하자면 작품의 객관성만이라도 봐주길 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은교'(은교도 그러한 작품은 아니지만...)와 같이 강신성일님과의 나이차, 파격적인 노출신이 이 영화의 전부가 아닐까 하는 이유, 배슬기가 신인이 아님에도 이런 노출신이 우려되는 작품을 선택했다는 것 등등 배슬기 본래의 이미지와는 차이가 나는 작품을 선택해서 누리꾼들에게 일종의 충격을 주어서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하나의 작품을 리뷰함에 있어서 비교적 짧은 분량 내에 그 작품의 특징을 잡아내는 것은 어떤 작품에 있어서 쉬울 수 있지만 어떤 작품에 있어서는 참 어려운 일 같단 생각이 든다.
특히나, 상징과 은유가 많이 함유된 작품이 그러할텐데, '야관문:욕망의 꽃'이 그러한 작품이 될지는 생각도 못했다.
(그 상징과 은유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배슬기의 노출에만 너무 많은 보도기사가 쓰여졌기 때문인데, 기실 보도처럼 '야관문'은 배슬기의 노출로 인한 에로물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랑과 욕망 그리고 진실, 삶과 죽음 등을 다루고 있는 결코 가볍지 않은 한편의 문학작품이라 해도 좋을 작품인 듯 하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야관문'은 평점이 그렇게 낮은 수준의 영화는 아닌 작품성을 갖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굳이 '은교'와 '야관문'을 비교하자면, '은교'가 노교수와 여고생의 사랑이라는 형식을 빌어 '젊음에 대한 찬가' 혹은 '늙어가는 것에 대한 한탄'을 상징했다고 한다면, 위에서도 밝혔듯 '야관문'은 퇴임교장과 28세의 젊은 여성과의 사랑이라는 형식을 빌어 '인간의 욕망과 삶과 죽음 그리고 진실' 등을 이야기하고자 한 듯 하다.
'야관문'은 사실 좀 충격적인 반전을 내포하고 있는 스토리를 지녔다.
그런데, 그러한 반전스토리가 크게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도록 임경수 감독은 잔잔한 영화적 어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 부분에서 영화적인 매력도는 좀 떨어진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뭐랄까, 젊음의 힘찬 에너지가 느껴지면 좋으련만 꺼져가는 불꽃과 같이 에너지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배슬기와 강신성일의 내면연기를 강조하려 그런 듯 한데, 그런 면이 조금 아쉬운 대목인 듯 하다.
만약, 그렇게 강력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반전이 있고, 폭발하듯한 연기력이 있었다면 '야관문'은 작품성 뿐만 아니라 흥행성도 어느 정도 보장되지 않았을까 싶다.
'야관문'은 비수리라는 풀의 또다른 명칭으로 비수리가 밤의 빗장을 열게 할 정도로 남성의 정력에 좋다는 이야기의 유래가 있어 그런 별칭이 붙었다 한다.
특히, 술을 담궈서 먹으면 야관문의 효능이 배가 된다고 하는데, '야관문'으로 인해서 비수리라는 풀이 동이 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면에는 긍정과 부정이 있듯이 비수리에도 효능과 함께 부작용도 있다 하니 잘 알아보고 체질에 맞는지 확인해보고 야관문주를 담그기 바란다.
야관문과 같이 여자도 탕부도 될 수 있고, 수녀도 될 수 있다잖은가.
'야관문'이란 제목에는 독화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배슬기(연화역)의 슬픈 사연이 숨겨져 있다.
영화를 보게 된다면 '야관문'이란 영화에 대한 편견, 배슬기에게 악플을 달았던 네티즌들은 모두 자신들이 오해를 했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야관문'이 전하고자 하는 진실은 어쩌면 '사회적 편견으로 비롯된 오해'라는 주제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려 함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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