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영화라고 분류될 수 있는 넷플릭스의 영화 '버드 박스'!
재난 영화의 소재는 참 다양한 편인데요.
'버드 박스'는 참 독특한 상상력을 발휘한 재난 영화의 하나로 분류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리뷰 601번째 이야기>
영제: Bird Box (2018)
장르: SF 외
런타임: 124분
감독: 수사네 비르
출연: 산드라 블록, 트레반트 로즈, 존 말코비치, 사라 폴슨
스포일러: 있음
'버드 박스'의 뜻은 nest box(둥지 상자)를 의미합니다.
새 상자, 새장으로 오역하기가 쉬운데, 새장은 영어로 cage나 birdcage라 합니다.
새장과 둥지 상자의 차이점은 새장은 새를 가둬놓기 위한 것이고, 둥지 상자는 새로 하여금 보금자리가 되도록 배려한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새장처럼 새를 잡아 가둬놓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새장에 갇혀 있는 새는 새장의 잠금장치를 풀어주어도 새장 밖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미 새장에 적응을 했기 때문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죠.
반면 둥지 상자의 새는 둥지를 이용하여 안식을 취하고 새끼들도 키우면서 자연 속에서 자유로운 자신의 일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인간에게 만약 "새장 속에 갇혀 살래? 아니면 둥지 상자에 살래?" 하고 양자택일 하라고 하면 대부분 둥지 상자에 살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외부 환경을 매우 공포스럽고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어서 생명을 위협한다는 가정을 하게 한 다음 위와 같이 동일한 질문을 하게 된다면 선택이 갈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새장 속에 갇힌다고 선택한다고 해도 그 새장이나 생명이 안전하게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버드박스'의 관전 포인트는 두려움에 맞써는 용기, 두려움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밀도 있게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인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두려움이나 공포는 생명을 지키는데 반드시 필요하였던 감정이었다 합니다.
만약 두려움이 없다면 절벽에서 뛰어내리거나,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멈춤 없이 그냥 직진을 하게 될테죠.
두려움이나 공포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위협에 대한 자제와 절제가 갖춰지게 된 것이라 보여집니다.
또다른 관점에서 '버드 박스'는 인간에게 집과 같은 안식처는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줍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고 하죠.
'버드 박스'는 집 나가면서 고생을 하는 형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영화에서 주인공이 고생을 하는 장면이 있으면 그 영화는 관객들에게 후한 점수를 받는데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산드라 블록의 생고생 장면이 '버드 박스'의 주류를 이루게 되지요.
기존에 있던 안식처가 더 이상 편안함을 제공하지 않게 될 때 새로운 안식처를 찾아 떠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안식처가 주었던 편안함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와 유사하거나 그와 동등한 안식처를 찾게 마련이죠.
'버드 박스'는 두려움과 공포를 주었던 존재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잘 살았더라'하는 결말을 지니고 있는데, 그 이후에 인류가 어떻게 살아 남게 될지는 막연한 희망만이 다일 뿐이죠.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그 악한 존재가 외부에 계속 존재한다라고 한다면 인간이 안식처라 느끼는 새로운 보금자리는 '버드 박스'가 아니라 아주 큰 새장이 될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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