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절대의 진리를 나타내기 위하여 할을 발한다.
즉 말, 글, 행동으로 할 수 없는 깨친자의 자리를 불가피하게 소리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할이 선종에서 사용된 것은 중국 당(唐)나라 마조도일(馬祖道一) 시대부터라고 생각되나, 임제 의현(臨濟義玄)에 이르러 널리 사용되었다.
의현의 할에 의한 지도를 ‘임제사할(臨濟四喝)’이라고 하는데, 이는 할을 사용하는 경우를 4종으로 구분한 것이다.
제1할은 학인(學人)이 지해정량(知解情量)에 묶여 명상언구(名相言句)에 집착할 때 할을 하여 깨우치는 것으로 보검(寶劍)이 물건을 절단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제2할은 수행자가 스승의 역량을 헤아리려 하거나, 근기가 얕음을 드러낼 때 위의(威儀) 있게 할하는 것, 사자가 포효할 때 뭇짐승이 놀라는 것과 같은 대기대용(大機大用)의 할이다.
제3할은 스승이 수행자를 시험하거나, 또는 반대로 수행자가 그 스승의 역량을 시험하기 위하여 할하는 것으로 이를 감험(勘驗)의 할이라고 한다.
제4할은 제1할의 용(用)을 짓지 않는 것으로 향상의 나일할(那一喝)이라고 하며, 위의 3할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수렴 ·포섭하는 것이다. 임제 의현 이후 중국 ·한국 ·일본의 선종을 통하여 할의 사용이 일반화되었다.
할(喝) 자연을 감상하며 종교적 진리를 엿본다.
할(喝)!
스님들이 참선할 때 졸거나 잡념을 쫓기 위해서 이런 소리를 하면서 죽봉으로 어깨를 치는 것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무협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이것을 많이 접하게 되죠.
항마를 하려고 소림승이나 무림 고수들이 '갈'이라고 사자후를 외치는 그런 외침 말이죠.
영화 제목이 꾸짖을 갈(喝)로 되어 있는데, 할로 읽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네요.
<할>은 독립영화입니다.
잠시 줄거리를 살펴보도록 하지요.
신화도 그렇지만 종교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생활과 문화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이 무신론자이든 어떠한 종교를 믿든지 상관이 없이 영향을 받지요.
종교 영화, 특히 불교 영화를 생각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아제아제 바라아제>라든가 <오세암><만다라>부터 시작해서 최근에는 <선라이즈 선셋><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화엄경>등의 작품을 떠올리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익히 잘아는 <서유기>나 <천녀유혼> 등도 종교 영화로 분류될 수 있다는 사실에는 약간 뜻밖이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어요.
<할>의 줄거리에서 보면 우리나라 역사에서 지금까지의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대립과 갈등으로 서로 각자의 길을 걸어왔다면 화합과 상생의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그러한 대승적인 것보다는 종교계 전반에 걸친 내부 갈등과 세속성에 대해 더 질타하고 싶지만 말입니다.
종교 영화는 엔터테인먼트 영화, 즉 상업 영화와는 달리 교훈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번 영화 <할>은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이러한 상업성이 더욱 배제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최근에 <워낭소리>가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면서 호평을 받은 것을 보게 되면 독립영화도 대중성을 지니기 시작한 것으로도 생각이 됩니다.
<할>이 관객들에게 어떠한 화두를 제시하면서 어필할지 주목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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