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인간에게 응답을 하지 않습니다. <일라이>나 <나는 전설이다>와 같이 영화 속에서나 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묘사를 하고 있죠. 이러한 영화를 보면 응답하지 않는 신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신이 예비한 길을 따라갈 뿐입니다.
'침묵하는 신'에 대한 것은 테레사 수녀님께서도 생전에 많은 번뇌를 가져 오게 한 부분이라 들었습니다. 인간은 어리석게도 보는 것과 듣는 것, 오감으로 느껴져야만 그 존재를 믿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죠. '아랑사또전'에 나오는 옥황상제도 인간에게 침묵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귀신인 아랑에게만은 관대한 것이라고나 할까요?
옥황상제가 아랑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캐낼 수 있도록 불사지체로 만들어 환생을 시켜준 것은 대단한 특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아랑을 미끼로 삼아 홍련을 멸하려고 하려는 목적성을 지닌다고 해도 말이죠.
어린 은오를 살려 저승사자 무영을 대신케 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라 여겨집니다. 이승에서의 혈연 때문에 옥황상제가 직접 하사한 검을 가지고 충분히 홍련을 찌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홍련을 찌르지 못하는 저승사자 무영을 대신하여 은오에게 이 일을 대리하게 하는 것은 옥황상제가 이미 이 일련의 일들을 다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는데, 은오가 옥황상제의 힘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지만 아랑이 다시 이승에 머물게 된 것은 자신의 의지가 상당히 반영된 결과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지니고 있는 존재인데, 아랑의 자유의지는 옥황상제까지도 그 청을 들어줄 정도로 강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은오는 아랑에게 고백을 하고 나선 아랑이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아랑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에만 전념하려 합니다. 그러면서 아랑에게 "죽음의 비밀을 꼭 캐내주겠다"고 말하지 않고, "널 꼭 천상으로 보내주겠다"고 말을 하죠. 이 말은 은오가 아랑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는 말이기도 하고, 은오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타인의 삶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없던 은오가 이미 여러 차례 아랑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아마 은오는 아랑을 대신해서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을 정도로 깊이 마음에 아랑을 둔 듯 합니다.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는 옥황상제는 은오를 위해 무엇을 예비해 두었을까요? 아랑을 위해선 천국을 예비해두었지만 은오를 위해서는 자신의 어머니의 탈을 쓴 홍련을 죽여야만 한다는 잔인한 일만을 예비해두었을까요? 그런 악역은 옥황상제가 아닌 염라대왕이 해야 할 일이라 여겨집니다. 이미 아랑을 천국에 들게 하려고 염라대왕을 설득하는 옥황상제의 모습을 볼 때 옥황상제가 그리는 그림은 은오가 아랑과 함께 하려고 하는 마음과 일맥상통하다 하겠습니다.
은오도 이미 한 번 죽었던 목숨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자신의 소임을 다한 후엔 아마도 아랑과 같이 있는 것이 '아랑사또전'이 말하는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요? 고쳐 생각해보면 자연의 섭리를 관리하는 옥황상제가 이미 그 섭리를 몇 번이나 깼으니 또 한 번 깨지 못하라는 법도 없겠죠. '숙영낭자전'과 같이 아랑에게 환생을 허락하는 은혜를 베풀 수도 있구요.
속속 들어나는 홍련의 행각
전직선녀인 홍련은 인간의 욕망 중에서 가장 큰 것이라 할 수 있는 영생을 탐하여 하늘로부터 쫓겨난 퇴출선녀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400년 동안 인간의 몸을 갈아타면서 영생을 꿈꾸는 홍련은 이승에서 저승사자 무영의 친누이이기도 했죠.
'아랑사또전' 초반을 보면 홍련은 보름이 뜨는 날에 처녀봉양을 받아야만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인간의 육신과 혼을 먹어 치우는 끔찍한 요괴가 아니라 무협지에 나오는 '이형환혼대법' 비슷한 방법으로 그려지고 있어 판타지의 묘미를 살리고 있지는 못한 듯 합니다.
만약, 이러한 방법으로 은오 어머니의 육신을 가지게 된 것이라면 은오 어머니는 이미 이승의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은오 어머니 또한 홍련의 술수에 의해서 홍련의 부림을 받는 악령이 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네요.
은오는 홍련의 비밀 아지트에 잠입하여 항아리 하나를 가져오게 되었는데, 설마 그 항아리 안에 악령으로 변한 자신의 어머니의 혼이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닐테지요?
한꺼풀씩 벗겨지는 홍련의 비밀들... 은오와 홍련의 대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 합니다. 어머니의 형상을 한 홍련을 은오는 어떻게 대하게 될지 궁금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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