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함께 죄와 벌 지옥과 환생

<영화 리뷰 530번째 이야기>

영제- Along With the Gods: The Two Worlds(2017)

원작: 주호민 네이버 웹툰 '신과함께'

장르: 드라마

런타임: 139분

감독: 김용화

출연: 하정우, 김향기, 차태현, 주지훈

*스포일러가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사람은 모두 죽습니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죠.

 

그런데, 사람이 죽고 나면 그 후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은 모두 종교적인 관점이죠.

무신론자들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할 뿐 '신과함께'의 내세관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과함께'에 등장하는 지옥은 불교에서 바라보는 지옥입니다.

지옥은 명칭이나 의미는 유사하나 각 종교에서 보는 지옥은 차이가 있습니다.

 

불교에서 지옥은 육도 윤회에 의해서 죽은 인간의 영혼이 거쳐야 할 하나의 관문입니다.

그렇지만 기독교에서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이분법이 존재할 뿐 윤회론은 거부하고 있죠.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처럼 '모든 인간은 살면서 죄를 짓고 산다'는 것도 사실에 가깝죠.

사람이 살면서 지은 죄에 대해서 내세에 벌을 받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불공평하다 느낄수도 있습니다.

사는게 지옥인 사람도 있으니까요.

 

힌두교에서는 카르마(업)이라 해서 이전 생에서의 삶의 업보로 인해서 더 낮은 계급으로 환생을 하여 현생의 삶에서 고통을 받는다고 보기도 합니다.

힌두교처럼 사실상 지옥의 개념이 유명무실한 경우도 있습니다.

 

△특별출연 염라대왕 이정재

 

원일병(디오)

 

하지만, 불교의 세계관에서는 현생에서 지은 죄를 지옥에 가서 벌을 받고 그 벌을 다 받게 되면 다시 환생을 하게 되는 윤회설을 지니고 있죠.

 

헐리웃 영화에서는 보통 기독교적 색채를 지닌 영화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 기독교적인 세계관에서 강조를 하는 것은 '희생(sacrifice)'입니다.

 

이 희생은 이타적인 의미의 희생이며, 가장 존귀한 희생은 타인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은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신과함께'에서 지옥의 심판을 받는 자홍(차태현)도 이와 같은 의미의 자기희생을 한 소방관으로 등장을 하는데요.

 

불교적 세계관을 가지다 보니 그 의미의 해석에 있어서 '신과함께'은 '용서'라는 의미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용서'라는 뜻의 사전적 의미는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을 주지 않고 너그럽게 봐주는 것을 말합니다.

'용서'란 인간적인 의미의 단어이지 신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단어라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불교에서는 '자비'라는 단어가 있는데 '신과함께'가 불교적 세계관을 지니면서도 굳이 자비란 단어를 쓰지는 않았네요.

 

 

자기희생을 한 사람은 기독교에서는 곧바로 천국행이라 할 수 있죠.

'신과함께'의 차태현은 '귀인(貴人)'으로 일컫어지며 저승사자인 강림(하정우), 덕춘(김향기), 해원맥(주지훈)의 보호와 변호를 받습니다.

어찌보면 귀인인 차태현은 살인,나태,폭력 등의 벌을 주는 지옥의 관문을 통과할 필요가 없이 곧바로 환생행이라 할 수 있죠.

 

 

 

 

'신과함께-죄와 벌'의 자홍(차태현)의 삶을 통해 우리는 어떤 삶이 '환생'이란 보상을 받게 되는 삶인가, 어떤 삶이 지옥의 심판관들마저도 감동을 시키는 삶인가를 관찰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자홍의 삶이 현실에서는 지옥과도 같은 삶, 치열한 삶 그 자체였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게 되죠.

 

 

영화의 제목인 '신과함께'는 강림, 덕춘, 해원맥을 가르키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좀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생명', '목숨'이란 단어의 주인이 자기자신의 것임과 동시에 '신', 그리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시간'들이란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 소중한 시간들을 아무런 의미 없이 헛되이 그냥 사는대로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가장 큰 죄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끝없는 우주 속에서 '나'란 존재는 나 하나 밖에 없는 고귀한 존재인데, 그 고귀한 존재가 아무런 의미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는 무언가 의미있는 존재로 기억될 수 있는 것!

그것은 '가족'이란 울타리가 있어서이기 때문일테죠.

 

 

'신이 바빠서 모든 것을 돌볼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를 두었다'라는 말이 있듯이 자홍을 지옥같은 삶에서 버티게 만든 것도, 그리고 지옥마저도 감동시킨 삶도 모두 어머니를 사랑하는 지극한 효심때문인 것이죠.

 

재미와 감동 두마리 토끼를 다잡은 '신과함께-죄와 벌'!

기대이상으로 재밌게 관람하였네요.

 

 

△'신과함께' 후속편이 나온다면 강림 등 저승사자들의 업보가 무엇인가, 자홍의 친동생 귀인 수홍(김동욱)의 이야기에 대해서 다뤄질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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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252번째 이야기>
원제: Elysium(2013)
장르: 드라마, SF
러닝타임: 109분
감독: 닐 블롬캠프
출연: 맷 데이먼 (맥스 드 코스타 역), 조디 포스터 (로데스 델라코트 역), 샬토 코플리 (크루거 역), 알리스 브라가 (프레이 역)
관람장소: 일산CGV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lysium, 엘리시움


 엘리시움-디스트릭트9에 열광했던 관객들은 또한번 열광할 준비하라

영화 '엘리시움'을 보면서 '디스트릭트9'과 비슷한 배경이란 느낌을 받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디스트릭트9'의 감독 닐 블롬캠프의 작품이었다.
'디스트릭트9'이 외계인과 인간의 합성이라면 '엘리시움'은 기계와 인간의 합성이다.
'디스트릭트9'이 외계인과 인간의 계급을 구분했다면 '엘리시움'은 부자와 그렇지 않은자로 계급을 구분하였다.

Elysium, 엘리시움


'디스트릭트9'에서는 인간보다 우월한 과학기술을 지닌 외계인의 침공을 예고하고 있는데, '엘리시움'에서는 부자를 마치 우월한 과학기술을 지닌 외계인처럼 대비하고 있다.
오염된 지구를 떠나 거대한 우주정거장과 같은 엘리시움에 거주하고 있으니 외계인은 아니더라도 '우주인'은 맞다고 할 수 있겠다.

Elysium, 엘리시움


'디스트릭트9'이나 '엘리시움' 두 작품을 통해 볼 때 닐 블롬캠프는 아마도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인간보다 우월한 과학기술을 지녔고, 그것은 곧 두려움과 함께 동경의 대상이라 여기고 있는 듯 하다 생각된다.

100년 정도 후인 22세기를 묘사하고 있는 영화 '엘리시움'이 그리는 이상향은 의료과학기술의 궁극을 보는 듯 하다.
그리고, 기계와 인간의 신경계를 연결하여 초인적인 전투기계로 만드는 기술 또한 놀랄 만한 것이라 보여진다.


100년 후면 어차피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아무도 살아 있지 않을테니 그 미래를 알 수는 없을 것이지만 헐리웃 영화에서 보여지는 이런 미래기술은 아마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지금 한창 연구중인 기술들일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영화 속의 미래기술들은 꽤나 흥미롭다 생각된다.

인간게놈지도가 완성되고, 재생의학, 유전공학 등 모든 의학기술이 궁극에 달하게 되면 아마 영화 속에서처럼 스캔 한번에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없을지는 몰라도 그에 상당하는 수준까지의 발달은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럼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엘리시움'이 '계급투쟁'과 '이상향'이라는 것을 그린다는 점에서 '설국열차'의 그림자를 떠올릴 수 있을 듯 하다.
그만큼 '설국열차'가 그린 세계관은 2013년 영화계의 하나의 이슈였고, 매우 인상적이었다 여겨진다.
그러나, 단순히 '계급투쟁'과 '이상향'의 유사점으로 인해 '설국열차'와 '엘리시움'을 비교할 수는 없을 듯 하다.
단지 이 정도만 짚어보고 넘어가는 것이 가장 맞는 것이지 싶다.

즉, '엘리시움'은 '설국열차'보다는 전작인 '디스트릭트9'과 매우 유사하다 느껴진다.
맷 데이먼의 액션연기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영화의 배경, 미래기술에 대한 동경 등이 그러하며 유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닐 블롬캠프의 두 영화 속 주인공들은 자기희생, 영어로 표현하면 'sacrifice'를 하게 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엘리시움의 뜻이 선택받은 자들만이 거주할 수 있는 이상향이라는 의미라면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자기희생'은 그러한 곳에 머물게 할 수 있는 선택적 특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비록 죽었으되, 죽지 아니하는 진정한 이상향으로 간 것이나 진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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