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관람차>의 작가 미나토 가나에는 최근 영화로 개봉한 마츠 다카코(松たか子 Takako Matsu) 주연의 영화 <고백>의 원작소설을 쓴 사람입니다.
처음 <야행관람차>를 펼치게 되었을 때 편하게 읽을 소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이런 생각은 약간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한 생각이 든 이유는 서평을 쓰게 될 때 이 포스팅의 부제를 무엇으로 해야할지에 대해서 상당히 고민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부제를 붙임에 있어서 크게 고민하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글의 방향을 결정 짓게 되는 것이기에 중요하게는 생각하는 편입니다.
<야행관람차>에 등장하는 인물은 엔도 가족(엔도, 마유미, 아야카), 다카하시 가족(다카하시, 준코, 요시유키, 히나코, 신지), 고지마 사토코의 9명이 핵심인물입니다.
이 등장인물 중에서 다카하시의 아내 준코가 다카하시를 죽임으로써 존속살해사건이 일어나게 되면서 '히바리가오카'라는 동네가 발칵 뒤집히게 되지요. (히바리가오카라는 명칭이 아주 많이 등장하고, 그 동네의 정경이 잘 묘사되어 있어서 마치 이 곳을 다녀온 사람처럼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그리고 이 존속살해사건을 둘러싸고서 나머지 7명의 캐릭터들의 심리 묘사와 대사들을 통해서 이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된 동기에 대해서 풀어나가는 형식입니다.
존속살해사건이라는 비상식적인 사건이 소설의 큰 스토리라인이고 또한 일본소설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비롯되는 일본인의 정서나 문화에 대해서 제가 잘 모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들 캐릭터들의 심리를 공감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하지만 역시 소설의 귀결은 살인자가 자신의 어머니라고 하더라도 '가족은 가족이다'라는 것으로 결론 내려진다는 것입니다. 일본 영화를 보게 되면 이런 대사를 많이 듣게 되지요.
'가족은 가족'이라는 말 속에는 가족으로 인해서 받은 상처나 괴로움, 아픔 등등 온갖 감정의 복합체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사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때때로 가족 구성원들에게 남들보다 더 많은 생채기를 내게 되는 것이 가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가족의 가장 근원적인 감정이 있기에 '가족은 가족'이라는 말이 나온 것일테지요.
뉴스를 보게 되면 <야행관람차>에서처럼 '존비속에 의한 살해사건'이 요즘은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닌 듯 합니다. '어떻게 저런 천인공노할 일이 동방예의지국이라던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나?' 하는 분노로 일관 되었던 것이 제 마음이라면, (사실 블로그에 표현하다보니 완곡한 표현을 써서 그렇지 실상은 'ㅁㅊㄴ'하고 육두문자로 간결하게 표현하고 맙니다만;;) <야행관람차>는 차분하고도 세밀한 필치로 이러한 존비속에 의한 살해사건을 일으킨 다카하시의 아내 준코나 자신의 딸 아야카를 죽이려했던 엔도의 아내 마유미의 심리를 통해서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터치하고 있으며, 나머지 가족들을 통해서 이 살해사건을 다각적으로 해석하려고 애쓴 듯 합니다.
어느 소설에서만 마찬가지로 이 소설도 클라이맥스 부분을 지나게 되면 갈등의 해소 부분이 있게 마련인데요. 엔도 가족 중 마유미와 딸 아야카의 갈등의 해소 부분은 우리가 곱씹어 음미할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작가 미나토 가나에는 '살인 사건'이라는 극단적인 사건으로 독자들을 주위 환기를 시키면서 가족의 무관심과 가족 간의 대화 단절, 소통의 부재, 가족이 주는 스트레스가 종내에는 <야행관람차>가 보여주듯이 존속살해까지도 불러 올 수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극단적으로 치달은 듯 보입니다.
가족이니까 남들보다 더 아들, 딸, 아내, 남편을 더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죠. 단지 그렇게 잘 안다고 착각을 하면서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상태를 방치하게 되면 이 소설이 보여주는 극단적인 상황이 올지도 모르지요.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