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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Gran Torino
장르: 범죄, 드라마
러닝타임: 116분
시사회 : 종로 3가 14번 출구 서울극장
시사회 주최사: 프레스블로그
http://www.gran-torino.co.kr
영화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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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몰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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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 토리노>는 영화를 이끌어 가는 두 가지의 큰 갈등 구조가 있다.
그 하나는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내적 갈등이다.
월트 코왈스키는 한국전 참전용사다. 전쟁 세대인 그가 이웃들에게, 자식들에게 마음을 못열고 냉담하게 대하는 이유는 극중의 신부의 말처럼 어쩌면 자기자신을 용서하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트 코왈스키의 연기를 보면서 그의 대사를 통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잭 니콜슨이 많이 떠올랐다.
두 배우의 직설적이고 악담에 가까운 폭언을 서슴치 않는 그들의 이면에는 가슴 따뜻한 진심 어린 마음이라는 공통분모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그에게 마음을 열 수 있는 동기가 된 것은 이웃으로 이사오게 된 몽족의 수(어니 허) 때문이다.
수는 자신의 내성적인 동생 타오와 함께 월트의 마음의 벽을 허물게 만든다.
수와 타오 등 이웃과의 친밀하고 즐거운 유대관계가 돈독해지면서 월트의 내적 갈등은 어느 정도 해소되는 국면에 왔다.
허나, 그러한 유대관계를 맺기에 또다른 외적갈등의 국면이 하나 파생되게 되는데 그것은 타오와 그의 친척이 속해있는 갱단과의 외적 갈등 관계다.
이 타오와 갱단과의 갈등 관계에 월트가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영화는 드라마 장르에서 범죄 장르로 서서히 옮아가게 된다.
월트와 타오와 갱단과의 갈등이 극에 달할 때 쯤 희생자가 발생하게 된다.
바로 수다. 수는 갱단에게 폭행을 당한다. 월트는 아끼는 수의 폭행 사실에 그 사랑 만큼이나 큰 분노에 휩싸인다.
평소의 월트라면 당장에 쫓아가 갱단을 엄벌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갱단이 있는 이 곳에서 수와 타오의 미래는 행복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그들의 행복을 위해 치밀한 계획을 하게 된다.
월트의 선택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단순한 복수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수와 타오를 위해 월트가 선택한 것은 '자기 희생'이었다.
그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맞바꾼 것이었다.
십자가의 형상을 하고 조용히 잠든 월트를 보면서 기독교적 가르침을 엄숙히 떠올려 보았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든, 성당을 다니는 사람이든 자신이 현세(現世)에서는 유복하고, 내세(來世)에서는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길 희망할 터이다.
본인도 그러하길 희망한다.
하지만, 천국에 들기는 참으로 어렵고도 어렵다.
흔히 교회에서 천국에 이르기 위해선 예수의 삶처럼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예수의 삶이란 것이 엄청난 고난의 길임과 동시에 자기 희생의 길이다.
범인들로써는 따르기 힘든 삶이다.
월트는 입으로는 자신의 신앙을 부정하였지만, 끝내는 자신의 신앙의 가르침대로 따랐다.
신부를 만나 속죄를 하였으며, 사랑하는 수와 타오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영화 <그랜 토리노>는 어쩌면 많이 늙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감독 겸 배우로써 스크린으로 그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신도 아마 그런 생각으로 이 영화를 선택하고 혼신의 연기를 펼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월트가 1972년 포드에 다니면서 직접 만든 명차 <그랜 토리노>처럼 명품 배우의 명품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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