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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70번째 이야기>
당첨 이벤트: 다음 영화 블로그 인셉션 시사회 이벤트
당첨 내역: 인셉션 시사회
관람장소: CGV왕십리점
원제: Inception
러닝 타임: 147분
장르: SF, 액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와타나베 켄, 마리안 꼬띠아르, 조셉 고든-레빗, 엘렌 페이지
영화평점:





영화몰입도:





※ 영화 평점 및 기타 그 외의 평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임을 양해바랍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어느날 너무도 생생한 꿈을 꿔서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 것인지 그 경계가 애매모호했던 기억이 다 한 번 정도는 있으시지 않으신가요?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뇌는 깨어 있는 동안 평생을 사용해야 10%도 채 못쓰고 죽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뇌가 꿈 속에서는 오히려 사용량이 더 많다고 가정을 해봅니다. 그리고, 그 꿈을 깨어 있을 때와 같이 어느 정도 의지로 조절할 수 있다고 가정합니다.
이러한 가정에서 출발한 <인셉션>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면서 그 경계를 모호하게 합니다.
꿈의 의미
꿈은 우리가 잠을 잘 때의 무의식의 발현이라고도 할 수 있고, 잠재의식의 발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두번째초대>의 작가 윤미솔은 꿈은 뇌가 꾸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 자아인 영혼이 꾸는 것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꿈은 밝혀진 것보다는 앞으로 밝혀내야 할 부분이 더 많은 신비로운 것입니다. 우리의 뇌도 마찬가지죠.
그러한 타인의 꿈과 기억마저도 훔쳐낼 수 있다는 상상력은 정말이지 기가 막힌 상상력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기가 막힌 상상력을 영화적 비쥬얼로 표현해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네요.
고대인들은 꿈과 상상력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시크릿>의 끌어당김 법칙과 같이 이 세상의 모든 생각과 상상력들은 우주 속에 둥둥 떠다니다가 누군가가 그것을 진정 원할 때 '영감'과 같이 그러한 것이 뇌리를 스쳐지나가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게끔 구현한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차원(Dimension)
1차원은 점, 2차원은 선, 3차원은 우리들이 사는 차원, 4차원은 시공간의 개념이 대칭성을 이뤄진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전물리학에서는 이제 나올 수 있는 물리학적 법칙(3차원적)들이 거의다 한계점에 다다랐다고 하더군요.
고전물리학에서 보는 차원은 이처럼 4차원까지입니다.
고전물리학 내에서 신학적인 부분을 해석하자면 신의 영역은 4차원에 있지 않을까 추측하기도 하였습니다.
헌데, 고전물리학에서 발전하여 연구 중인 이론물리학에 따르면 이 차원의 개념이 훨씬 고차원으로 가게 됩니다.
현재 이론물리학은 10차원 내지 11차원까지 차원의 영역이 확장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신의 영역도 4차원 이상의 차원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인셉션>의 영화적 세계관이 꿈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꿈은 몇 차원일까요?
상상력에 한계는 어디까지일까요?
꿈 속에서 우리는 날아다닐 수도 있고, 맘 먹은대로 무엇이든 될 수가 있습니다.
마치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요.
꿈은 이러한 차원의 경계, 상상력의 한계마저 허물어뜨립니다.
<인셉션>은 그러한 차원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혹은 차원의 경계를 뛰어넘는 듯한 영상미학을 간간히 보여줍니다.
이론물리학의 이론 중에 '물고기의 비유'라는 유명한 이론이 있습니다.
물 속의 물고기는 자신들의 세계에 갖혀 있죠.
그런데, 이 물고기를 사람이 손으로 끄집어낸다고 가정합니다.
물고기 입장에서는 자신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나온 것이죠.
자신이 알던 세계에서 다른 미지의 세계로.......
자신이 속한 차원에서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이것은 인간으로치자면 '휴거'에 비유될 수 있는 일일겁니다.
<인셉션>에서 꿈은 이러한 것에 비유될만한 것 같습니다.
유체이탈의 SF적 해석
<인셉션>의 영화적 세계관은 이 한마디로 해석하면 가장 가까울 것 같습니다.
유체이탈 체험자들에 의하면 유체이탈을 하게 되면 자신이 뜻하는 바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무한한 존재가 된다고 하더군요.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은 물론, <인셉션>에서 보여주듯이 어느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의 이동이 순식간에 벌어지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시공간적인 것은 지구에만 한계 짓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유체이탈과 같은 경험을 <인셉션>에서는 드림머신이라는 기계장치의 힘을 빌고 꿈에 비유하여 SF적으로 해석하였다고 보여집니다.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이러한 장치적 힘을 빌어서 상대방의 기억을 훔치는 그 방면의 대가(大家)입니다.
이런 코브에게 훔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심는 프로젝트, 이 영화의 제목인 인셉션이 생깁니다.
기억의 한계성
우리의 뇌가 기억을 하는 것을 어떠한 정보에 대한 대뇌피질의 화학 작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억에는 한계성이 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요하지 않는 정보라고 판단되는 것을 망각하는 기능과 또는 왜곡 ·변질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러한 기억의 망각에 대한 것을 영화적으로 위에서처럼 코브와 그의 아내 맬(마리안 꼬띠아르)이 무의식의 가장 밑바닥에까지 가서 건립한 자신들의 세상을 허물어뜨리는 것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셉션>은 꿈이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공포나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것도 있을 수 있지만, 반대로 행복과 사랑, 아름다운 추억 같은 것도 있습니다.
<시크릿>의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해석한다면 우리가 부정적인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부정적인 것들이 무의식을 지배하여 악몽과 같은 것으로 나타나고, 반대로 긍정적인 것을 생각한다면 온갖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환타지와 같은 꿈을 꿀 것입니다.
유체이탈 경험자이자 <두번째초대>의 작가인 윤미솔은 종교에 관계 없이 자신의 무의식이 긍정적이고 천국을 꿈꾼다면 천국으로 가게 되고, 자신의 무의식이 부정적인 것이 많다면 지옥으로 이끈다고 합니다.
트라우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현실 세계의 여성과의 관계에서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겪은 것일까요?
그의 작품을 보면 유독 여성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는 극중 배역을 읽을 수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최근작인 <셔터 아일랜드>에서도 그렇고, <에비에이터>에서도 그렇고, <인셉션>에서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두 작품에서완 달리 <인셉션>에서의 그는 행복해 보입니다.
<인셉션>에서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내려놓고 자신이 꿈꾸던 세계를 선택합니다.
<셔터 아일랜드>와 유사한 스토리라인이지만, <인셉션>에서의 결말은 해피엔딩이죠.
(현실에서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자신의 이상형을 만난 것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
<인셉션>에서처럼 행복은 이렇게 꿈 속에서처럼 차원을 넘어서고, 무의식에서조차 입은 상처를 치유해야만이 가능한 것일까요?
그가 그토록 원하던 가족과의 행복한 일상이 죽음과 맞바꾸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지금 꿈 속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든지 죽음을 회피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장례문화는 곡을 하면서 죽음을 슬퍼하는 반면, 우리와 다른 문화권에서는 오히려 죽음을 축제처럼 여기고 즐기는 문화권도 있다고 합니다.
인간은 미지에 대한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죽음도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 두려운 것이지 않나 싶습니다.
저도 앞으로 살아가야할 날이 많은 인생이지만은 우리가 사는 현실이 꿈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꿈에서도 현실과 똑같이 아프고, 현실과 모든 것이 똑같은 <인셉션>의 세계에서의 죽음은 현실로의 회귀입니다.
이것은 어찌보면 우리의 현실이 죽음으로 인해서 깨어난다면 이상향으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꿈에서 깨어났을때 악몽을 꾸기를 바라시나요?
아니면, 꿈에서 깨어났을때 정말 아름다운 꿈이었다고 생각하길 바라시나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현명한 선택을 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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