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논란 안타까운 이유

<영화 리뷰 529번째 이야기>

영제: The Battleship island(2017)

장르: 액션 외

런타임: 132분

감독: 류승완

출연: 황정민, 송중기, 소지섭, 이정현

*스포일러가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2017년 최고의 기대작이었던 '군함도'는 결과적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반전을 준 영화이기도 하였습니다.

 

류승완 감독은 '부당거래'에서부터 사회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면서 이후의 작품인 '베를린' 등으로 작품의 흥행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작품성에 있어서도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었지요.

 

충무로의 액션키드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류승완 감독은 자신의 영화 작품들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자신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 감독 중의 한명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내공이 쌓여 '베테랑'으로 류승완 감독은 1340만명의 흥행 기록을 세우면서 천만 흥행 영화 감독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군함도'는 천만 영화를 만든 류승완 감독의 후속작이었고, 그 제작 초기에부터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하였던 영화이기도 했죠.

 

 

 

그리고, 캐스팅에 '태양의 후예'로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송중기와 황정민이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에 '군함도'는 개봉 전부터 천만 관객은 따논 당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군함도'의 흥행은 결과적으로 영화 외적인 논란으로 인해서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군함도'의 손익분기점이 700만명이었으니 총 659만명이 관람을 한 '군함도'는 흥행에 성공했다는 표현은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류승완 감독이나 출연자들에게 아픈 것은 영화 외적인 논란입니다.

'군함도'의 논란은 크게 세가지 정도로 나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류승완 감독의 역사인식 문제

2. '군함도'는 뉴라이트/친일/국뽕/역사왜곡 영화이다.

3. '군함도'의 스크린 독과점 문제

 

'군함도' 개봉 초기부터 순서대로 이러한 논란들이 끊임 없이 제기되었고, 결국 '군함도'는 이러한 논란들로 인해 예비 관객들에게 외면 당한 영화가 되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선택 기준은 저마다 다를테지만 크게 '감독', '배우', '장르', '영화에 기대감' 등으로 선택되어진다고 할 때 '군함도'의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거의 마이너스에 가깝게 떨어지게 되었죠.

 

바로 이 부분이 '군함도'의 영화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군함도'에 대해 "규모와 주제를 얻고, 생기와 개성을 잃다"라고 평했습니다.

 

제가 본 '군함도'는 그 작품성이 관객의 기대에 부응한다고까지는 못하겠으나, '군함도'를 통해 일제를 비판하고자하는 주제 자체를 잃어 버렸다고까지는 이야기하기가 어려운게 사실이죠.

 

 

일부에서 문제 제기되고 있는 '일본인보다 더 나쁜 한국인'은 한국인은 분명 맞지만 한국인이라 표현되기보다 '친일파'라고 표현되는게 옳죠.

그리고, '군함도'에서 그 친일파와 일제의 수장은 주연급 배우들에 의해 처단됩니다.

 

 

'군함도'의 흥행 실패로 웃는 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음모론적인 관점이지만 '군함도'의 논란을 조직적으로 누군가 부추기고 영화를 보지 않은 많은 관객들이 이런 논란에 동조를 했다는 느낌도 듭니다.

 

 

이 영화를 만든 류승완 감독이나 영화에 출연한 황정민, 송중기 같은 배우들은 일본 입국금지를 당할지도 모르죠.

실제로 송일국은 독도 수영 릴레이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이승철은 독도에서 '그날에'라는 노래를 불러 일본에 입국금지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한 각오를 하면서 출연을 한 영화인데 '군함도'가 친일파 영화로 낙인 찍히는 것은 얼마나 속상할까요?

 

 

 

'군함도'가 정말 그런 영화였는지는 영화를 본 사람만이 판단할 수 있겠죠.

영화를 보지 않고, 잘못된 정보에 동조를 한다면 제 2, 제 3의 '군함도'가 충분히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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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하시마섬 역사 지우기,하하 다카시마 공양탑 울분와 비통의 묵념

우토로 마을에 이어 하하의 배달의 무도는 지옥의 섬인 하시마섬으로 이어졌다.

하시마섬은 군함 모양을 닮아 군함도(군칸지마)로도 불리는 곳이다.

 

 

우리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이 하시마섬을 유네스코에 등재시켰다.

화려한 생활의 호화로운 아파트 고층에는 일본인들이 살았고, 그 아래 지하에는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는 강제노역장의 한국인들이 살고 있었다.

 

 

지하 1000m 탄광 속에서 최고 섭씨 45도의 지열과 싸우면서 배고픔 속에서 육체노동을 감당해야 했다.

 

 

일본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꼼수를 쓰면서 강제 징용 시기를 제외하고 등재 신청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강제 징용 시키는 1916년 이후인데 일본이 등재 신청서에 기재한 시기는 1850년~1910년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강제 징용 사실을 명시하도록 요구했고 일본 역시 강제 징용을 인정하기로 합의했으나 세계문화유산이 등재되자 '포스드 투 워크(forced to work)'라는 표현은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며 말을 바꿨다.





하하는 서경덕 교수와 함께 첫째날 하시마 섬을 찾았으나 파도가 높아 들어가지 못했고, 다음날은 하시마 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일본인들은 이곳을 강제징용에 대한 것은 지운 채 관광코스로 일부만을 공개하고 있었다. 

하하는 그곳에 있기가 힘들다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더욱 충격적인 내용은 강제징용을 하다 희생당한 한국인 유골 100여구가 이곳에서 떨어진 다카시마 섬에 묻혀 있었다는 사실이다.

길을 알지 못하면 절대 찾을 수도 없을 정도로 깊숙한 곳에 한 일본기업이 세웠다는 공양탑을 찾은 하하는 여기를 어떻게 찾아오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경덕 교수는 "하시마 탄광에서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서 위패를 적어놓은 것을 이쪽으로 옮기기 전에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분인지 누구의 무덤인지 알 수가 없다"라며 설명을 하였다.

 

하하는 다음날 하시마섬의 생존자이신 두분의 편지를 받아서 다시 다카시마 공양탑을 찾았다.

그곳에서 하하와 서경덕 교수는 따뜻한 밥과 국을 올리고,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일평생 강제징용을 당하며 비통한 죽음을 당하신 분들께 묵념을 올렸다.

 

일본은 하시마섬의 강제징용의 역사를 왜곡을 넘어 역사지우기에 돌입하고 있단 느낌이 들었다.

'무한도전'의 이번 기록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깊은 일이었다 보여진다.

좀더 디테일하게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p.s. 일본은 강자에 허리를 굽히고, 약자에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이 허리를 숙이도록 우리나라가 국력을 키우는 길만이 이같은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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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하시마섬,귓가에 맴도는 유재석의 한마디

배달의 무도에서 유재석은 태어나자마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로 입양 보내어진 사연의 주인공(권선영)을 만나 음식 뿐만 아니라 감동까지 전달하였다.

한국어를 할 줄 몰라 통역을 통해서 뜻을 전달하였고, 곧 출산을 맞이하게 될 동생을 위해서 엄마의 음식을 전해주고 싶다는 언니의 사연을 읽으면서 뭉클해 하였다.

 

 

이 방송 말미에 다음주 예고편이 나왔는데, 일본 하시마섬이 등장했다.

하하는 눈물을 흘렸고, 유재석은 허리를 굽히면서 "죄송합니다. 너무 늦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시마 섬은 나카사키 현 나카사키 시에 속한 섬으로 군함도(軍艦島)라고도 불린다.

1960년도까지 다카시마와 함께 일본 근대화를 이끌며 광업도시로 번영을 누렸으나 현재는 무인도이다.

 

 

5000명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였었고, 학교,점포,학원,영화관 등이 있었던 도시였다.

오늘 천만관객을 넘어 천만감독이 된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은 차기작으로 이 군함도를 제작 중이라 한다.





현재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바람이나 파도 등 기상의 영향을 받는 관계로 일년 중 100정도 상륙 가능하다 한다.

 

 

1974년 1월 15일 폐광되었고, 4월 20일 모두 떠났다.

섬의 소유는 미쓰비시가 소유하고 있었으나 2001년 나카사키 시 소유가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군함도는 '들어가면 살아나올 수 없는 지옥도'였다.

가증스럽게도 일본은 이곳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시키는데 성공하였다.

 

 

놀랍게도 하시마섬에 강제징용을 하였던 한국인 중 생존자가 2명 있다 한다.

 

 

미즈하라 키코가 이곳을 배경으로 '진격의 거인' 영화 홍보차 사용하여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욱일승천기에 이어 다시 한번 우익 논란을 겪은 바 있다.

 

이곳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도 강제징용을 당했던 곳이다.

우리에게 아픈 역사인 하시마섬은 현재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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