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을 통한 인간 욕망에의 탐구



저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마음 속에 선과 악이 공존하며 이에 따라 마음 속이 천국도 될 수 있고, 지옥도 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아랑사또전'의 무연을 통해서 이러한 인간의 선과 악의 근원을 해석해보니 선과 악으로 구분되어지는 그 본질은 무연이 그토록 탐하던 인간의 욕망과 탐욕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무연이 본래는 선녀였다는 설정은 선인도 악인이 될 수 있으며, 악인도 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무연이 타락천사가 된 과정을 보면 성경에서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을 당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불교의 도를 깨달은 사람'을 부처라고 하는데, 모든 세속의 연을 끊고 감정의 고리마저 끊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득도의 경지라면 '아랑사또전'의 판타지적 세계관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가 신으로 묘사가 되어 있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 부분에서 무연은 신의 계급인 선녀에서 욕망을 지닌 타락천사로 되는 것은 신의 세계에도 엄연히 계급과 서열이 존재하며 반대로 인간도 신이 될 수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아랑사또전'의 세계관은 불교의 세계관과 상당히 유사하다 하겠습니다.
인간이었던 무연은 전생에 선업을 쌓아 천상의 선녀가 되고 이로 인해 윤회를 마칠 수도 있었지만, 욕망을 끊어내지 못하여 다시 윤회를 하는 세계로 돌아오게 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헌데,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무연이 이러한 자연의 순리를 무시하고 영생을 하기 위해서 육신을 갈아타는 방법을 알아버렸다는 것입니다.
천상에서 도망쳐나와 처음 육신을 가졌을 땐 금방 죽은 육신을 가진 듯 합니다.
허나, 이렇게 금방 혼이 떠난 육체를 얻기가 생각보다 쉽진 않았겠죠.
이후 산자의 육신을 빼앗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랑사또전'에서 혼과 혼이 뒤섞이면 악귀가 되는 것으로 묘사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연의 혼이 본격적으로 타락하기 시작한 것은 산자의 육신을 점유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혼의 뒤섞임으로 인해 무연의 혼도 악귀가 된 것이죠.
무연의 영생에서 욕망과 탐욕이 그러한 결과를 만들었다 하겠습니다.

무연의 타락은 '서유기'의 제천대성 손오공이 불덕을 쌓는 것과는 정반대가 되는 캐릭터라 할 수 있습니다.
원숭이의 왕 미후왕인 손오공이 삼장법사와 함께 천축국에 감으로써 하늘의 성인인 투전승불이 되는 것과는 전혀 반대의 길을 가고 있죠.

이렇듯 '아랑사또전'의 세계관과 불교의 세계관을 비교해보니 무척이나 흥미로운데요.
그렇다면 은오는 요괴로 변한 무연을 잡는 제천대성인 셈인가요.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이나 옥황상제 손바닥 안의 은오나 피차일반인 듯 하네요.
  

사랑의 희생양 아랑


'아랑사또전'은 불교·기독교·도교가 결합된 매우 독특한 세계관을 지닌 오컬트 장르의 드라마라 보여집니다.
완성도가 미흡하긴 하지만 이러한 색다른 시도만큼은 응원을 해줄만 하죠.

무연과는 반대로 죽음의 진실을 각성하게 된 아랑의 캐릭터는 사랑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캐릭터입니다.

주왈을 짝사랑한 이서림은 무연이 은오 어머니의 몸을 점유하게 되는 것을 목격하게 되죠.


혼이 뒤섞이면서 은오 어머니의 혼과 무연의 혼이 하나의 육신을 두고 쟁탈을 벌이는 과정에서 무연은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면서 은오 어머니의 몸을 칼로 찔러 자살하려고 합니다.
이를 말리던 주왈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자 이를 지켜보던 이서림이 불쑥 튀어나와 대신 칼을 맞아 죽게 되죠.
 

자신이 사랑하던 주왈을 구하기 위해 대신 목숨을 버린 자기희생적인 사랑입니다.
무연은 이서림의 기억을 지워 버립니다.
혹시라도 이서림이 저승에 가서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를 옥황상제나 염라대왕이 알게 될까 두려워하여 그런 것이겠죠.
 

 

아랑은 옥황상제의 계획을 어렴풋이 알아차리게 됩니다.
첫사랑이었던 주왈이 자신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말이죠.
죽음의 진실을 밝혀 내어 천상에 드는 일이 이렇게 괴로운 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겠죠.
죽음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아랑이 서글퍼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에 대한 잃어 버린 기억도 거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연과 아랑의 대비를 통해서 인간의 욕망,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 중 어느 것을 더 많이 꺼내 쓰느냐에 따라 무연이 될수도 아랑이 될수도 있다는 것이겠죠.
'아랑사또전'이 작품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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