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236번째 이야기> TRON: Legacy(2010) 장르: 액션, SF 러닝타임: 125분 감독: 조셉 코신스키 출연: 제프 브리지스(케빈 플린 역), 개럿 헤들런드(샘 플린 역), 올리비아 와일드(쿠오라 역), 보 개러트(사이렌 젬 역) 관람 매체: 수퍼액션 영화 평점: 영화 몰입도: ※ 영화 평점 및 기타 그 외의 평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임을 양해 바랍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가상현실, <매트릭스> VS <트론:새로운시작>
<트론:새로운 시작>은 <매트릭스>와 같이 디지털적 가상 현실을 다룬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렇지만 <매트릭스>와 <트론:새로운 시작>이 지향하는 세계관은 매우 다른 차이점을 지닌다. 우선 이 두 영화의 제목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매트릭스(matrix)'의 뜻은 '모체', '자궁', '행렬'과 같은 다의적인 의미를 지녔다. 영화 <매트릭스>는 단순하게 시각적인 면에서만 보자면 행렬('여러 개의 숫자나 문자를 몇 개의 행과 몇 개의 열로 나열한 것') 그 자체일 수도 있고, 기계에 의해 인간이 양육되는 22세기 말의 디스토피아를 그린다는 점에서 '모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을 중심으로 보자면 <매트릭스>는 기계에 전력을 공급하는 '모체'로 살아가면서 디지털 가상세계에 종속되어 산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 셈인데, <매트릭스>를 보다 보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3차원보다 높은 차원 속에 종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이 워쇼스키 감독이 <매트릭스>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이야기하고팠던 신학과 철학의 깊은 테마라 보여지는데, <트론:새로운 시작> 또한 전달하고자 하는 신학과 철학은 이와 유사하다 하겠다.
다만, <트론:새로운 시작>은 인간이 창조주가 되려 한 차원 낮은 디지털 가상 세계로의 진입을 꾀했다는 점이다. 육체는 현실에 남겨둔 채 정신만이 가상세계로 떠나는 <매트릭스>와는 달리 <트론:새로운 시작>에서는 육체 또한 가상세계로 진입을 한다.
'tron'의 뜻은 '진공관', '원자 이하의 입자를 처리하는 장치, '소립자' 등의 의미를 지닌 어미인데, 0과 1로만 이뤄진 2진법이 존재하는 디지털 가상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유기체인 인간이 '소립자' 형태로 변하여 차원의 경계를 뛰어넘는 셈이라 할 수 있다.
영화 <플라이>(1986)에서도 이와 유사한 장치가 나오는데,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장치가 현실화 된다면 시·공간을 초월할 수도 있겠지만 아주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겠다.
어쨌든 <트론:새로운 시작>에서는 디지털 가상세계로의 진입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한 차원 낮은 경계를 넘어선 인간은 마치 신이 된 듯이 창조주로 그려지고 있으니까. <매트릭스>의 네오든, <트론:새로운 시작>의 플린이든 경계를 넘어선 자가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매트릭스>의 가상현실이건, <트론:새로운 시작>의 가상현실이건 간에 완벽하리라 생각되었던 이 차원도 불완전한 세계다. <트론:새로운 시작>에서 그리드를 만든 창조주인 케빈 플린은 완벽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자신과 똑같은 클루를 만들어 협조를 요청한다. 그러나, 플린의 명령을 받아들인 클루가 불완전한 존재, 인간인 케빈 플린을 배반할 것이란 것은 예상하지 못했을 터이다. 이로 인해 플린은 클루에게 대부분의 권력을 빼앗긴 채 디지털 가상세계 속에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플린의 디지털 가상세계 창조 과정에서 눈여겨 볼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창조하지 않은 무에서 유가 난 것이라 할 수 있는 '아이소'(아이소트론에서 의미를 가져온 듯 함. 아이소트론: 동위원소의 전자기(電磁氣) 분리기의 일종.)의 마지막 생존자 쿠오라다. 그녀는 유기체와 디지털의 결합체인 셈인데 어쩌면 플린이 꿈꿨던 디지털 가상세계가 창조해 낸 완벽한 존재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클루에 의해 피지배 당하게 된 플린의 가상세계가 디스토피아라고 한다면, 쿠오라는 플린이 꿈꿨던 유토피아라고 할 수도 있겠다.
1982년도 작품인 <트론>은 개봉 당시에는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당시에는 필자도 어릴 때이고, 영화를 보는 눈이 액션과 시각적 효과에만 치우쳐져 있었다 하겠다. 리메이크 된 <트론:새로운 시작>을 보고 이제야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눈에 보이게 되는 듯 하다. 모르긴 모르지만 이러한 작품들이 있기에 <매트릭스>와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겠나 싶다.
만약 <매트릭스>나 <트론:새로운 시작>에서 보여 주듯이 차원의 경계를 넘어서게 되면 '인간이 신으로 군림할 수도 혹은 현재의 차원에서는 만날 수 없는 신을 만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필자가 그러한 상상을 하는 이유는 스티븐 호킹 박사가 우주가 최고 11차원으로 이뤄져 있다고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3차원적인 존재인 인간이 보다 높은 차원에 있을지도 모르는 신을 현실에서 만나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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