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첫방, 징비록 시청률, 정여립의 난(기축옥사)과 선조 때 사건
KBS 대하사극 '징비록'은 광복 70주년 특별기획으로 만들어진 정통사극입니다.
'징비록' 첫방 시청률은 10.5%로 두자릿수 시청률로 시작했습니다.
선조 역의 김태우(사진출처 영화 '관상')
조선 14대왕인 선조 때는 조선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 많이 발생을 합니다.
'징비록'이 그러한 임진왜란 때의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한 책이긴 하지만, 임진왜란과는 별개로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알아두면 좋을 배경지식으로써의 기축사옥(정여립의 난)과 같이 선조 때의 굵직한 사건들을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조]
선조 재위기간(음력): 1567년 ~ 1608년 2월 1일
원래 이름은 이균, 후에 이연으로 바꿈
명종의 조카였던 선조는 명종의 외아들 순회세자가 요절한 후 후사 없이 죽자 뒤를 이어 조선의 14대 국왕이 되었다 합니다.
→조선의 첫번째 방계임금(대대로 적자에게 내려오던 왕통이 선조 때 단절됨)
임진왜란 때 수도를 버리고 몽진(蒙塵, 머리에 먼지를 쓴다는 뜻으로 임금이 난리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것을 말함)하는 처지로 전락함.
선조의 능=목릉(穆陵, 제14대 선조와 왕비 의인왕후 및 계비 인목왕후의 능).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경내
조선 역대 국왕 중 명필로 손꼽힘
선조 어필[속리산 법주사 소장]
‘담장 가의 매화 한 가지가/추위를 능멸하고 홀로 피었구려/멀리서도 눈송이가 아님을 알겠으니/은은한 향기가 풍기기 때문이지’
(墻角一枝梅 凌寒獨自開 遙知非是雪 爲有暗香來)
[선조 때 사건]
-종계변무: 명나라 <대명회전>에 이성계의 부친이 이자춘이 아닌 고려말의 권신이자 이성계의 정적인 이인임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바로잡은 일.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바로잡은 일로 태조 3년부터 200여년 간 추진된 외교 정책.
사진: 바이두 검색
'징비록' 1회에 종계변무에 대한 나레이션:
'명나라의 법전인 <대명회전>에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권신 이인임의 아들이며 고려왕(공양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조선 조정은 200여년 동안 수많은 사신을 보내 수정을 요청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는데 마침내 그 뜻을 이룬 것은 조선 최초의 방계 출신 왕인 선조였다.
이를 종계변무라 하는데, 정통성에 대한 손주의 부담감을 일시에 덜어주는 큰 외교적 성과였다'
-기축옥사(1589), 정여립의 난이라고 불리는 선조 때의 옥사.
정여립이 모반을 꾸민다는 황해도 관찰사의 고변으로 인해서 수많은 동인이 희생된 사건.
정여립은 당시 대동계를 조직하여 무술을 연마하며 왜구를 소탕하기도 하였다.
황해도 관찰사의 고변 내용, 한강 결빙기를 이용해 대동계 인물들이 황해도와 전라도에서 동시에 봉기하여 입성하고, 신립과 병조판서를 살해한 후 병권을 장악한다는 것.
정여립은 자결을 하였으나,(정여립 모반 사건을 수사를 주도하던 인물은 정철) 정여립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인물들 천여명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임진왜란 직전까지 조정을 뒤흔든 사건.
-임진왜란(1592)
-이몽학의 난
조선 이씨 서얼 출신 이몽학이 일으킨 난.
의병을 모집한다는 이유로 동갑회를 만들었으나 반란에 이용하려 군사훈련을 시켰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라는 영화에서는 이몽학의 난과 정여립의 난을 연계시키기도 하였다.
-정유재란(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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