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령은 경혜공주가 썼던 방과 공주의 의복을 입으면서 지난 날을 떠올리며 만감이 교차합니다. 자신과 혼담이 오가던 직강 승유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경혜공주를 대신해 공주로 꾸미고 강의를 들었던 그 때가 지금와 생각하니 꿈처럼 아련하기만 합니다. 치기 어린 장난이었지만 지금은 진짜 공주가 되었습니다.
<공주의 남자>를 보면서 이들의 사랑이 과연 어떻게 결말이 지어질지 굉장히 궁금해집니다.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세령과 승유의 사랑이 <금계필담>이라는 야사에서 착안된 점임을 미뤄보건데 이들의 사랑이 이뤄질 가능성이 50%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말을 확정지을 수 없는 이유는 '야사'라는 것의 정의가 굉장히 폭넓기 때문입니다. 정사의 반대 개념인 야사냐 혹은 야담·전설·기담과 같은 흥미 위주의 야사냐, 재야인이 쓴 역사로써의 야사냐 등등 야사의 정의를 하기 나름에 따라 그 결과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공주의 남자>의 여러 장면과 대사들을 통해서 결말을 유추해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세령: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우리 함께 살아요.
다음 회 예고편에서 세령은 승유를 백허그로 껴안으면서 이런 대사를 합니다. 세령은 승유에게 이처럼 매번 기회가 닿을 때마다 그가 복수를 멈추고 자신과 떠날 것을 권유합니다. 만약 승유가 복수를 멈추고, 세령의 말을 따른다면 <금계필담>의 결말과 매우 유사해지는 것이죠.
단종복위 운동
사육신의 등장은 단종복위 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또다른 비극적 운명을 그리려 하고 있습니다. 계유정난이 김종서 가문의 비극으로 그려졌었다면, 단종복위 운동은 단종과 경혜공주, 그리고 정종의 비극이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단종은 죽게 되고, 경혜공주와 정종은 노비로 전락이 될 것입니다.
단종이 죽게 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면, 경혜공주와 정종의 이야기는 야사의 일부입니다. 이 단종복위 운동의 비극을 통해서 <공주의 남자>의 이야기도 결말로 치달을 것입니다. 여기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승유와 세령이 야사의 결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죠. 제 바람이기도 하구요.
<공주의 남자>는 정사와 야사가 혼합된 퓨전사극으로 역사적 사실이자 정사의 주인공인 세조의 반대편에 야사의 주인공들을 배치함으로써 이야기의 구조가 매우 탄탄한 작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경혜공주와 정종의 비극 또한 정사이기보다는 야사에 입각하기 때문에 어느 것이 정사인지 어느 것이 야사인지 구분하기가 모호할 정도로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거기에 더해 몰입하게 만드는 배우자들의 연기 또한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죠. 스타급 배우가 없이도 웰메이드 작품은 입소문이 나게 마련입니다. <공주의 남자>의 시청률이 24% 넘어 선 것도 이처럼 탄탄한 이야기구조와 뛰어난 연기력이 뒷바침 되었기 때문이죠. 극 초반에 <공주의 남자>를 시청하면서 영화 <왕의 남자>가 생각났었습니다. <왕의 남자>도 스타급 배우 없이 뜬 작품이잖아요. 이준기가 이 영화를 통해서 굉장한 스타급 배우가 되었듯이 <공주의 남자> 또한 두 주연배우인 박시후와 문채원이 스타급 배우로 거듭날 작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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