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황후 시청률, 역사왜곡논란 불구 노이즈마케팅의 득을 본 케이스
역사왜곡논란으로 시청을 하지 않겠다는 반대측,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믿고 본다는 하지원이 나오는 드라마이니 나는 본다는 찬성측......
논란의 드라마 '기황후'의 시청률은 월화드라마의 판도를 뒤엎으면서 10.1%의 두자릿수로 출발하였다.
그리고 결과만 놓고 본다면 역사왜곡논란은 의도하지 않은 노이즈마케팅이 되었고, 그로 인해서 저조한 시청률로 출발하리라는 당초 예상을 뒤엎고서 노이즈마케팅의 득을 본 결과를 낳았다 보여진다.
저조한 시청률이 예상되었던 역사왜곡논란의 '기황후'
노이즈마케팅이 오히려 득된 케이스라는 생각에 공감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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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황후'의 역사왜곡논란은 시대물이니 역사적 사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고증을 통해서 이뤄져왔던 시대물의 상식을 깨는 점, 많은 역사적 인물들 중에서 하필이면 역사적 평가가 좋지 못한 기황후나 충혜왕이냐는 점 등이 역사왜곡논란의 배경이 되었다.
이에 대해 주진모가 제작발표회 당시 "드라마가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인 것에 대해 아쉬운 건 없다. 역사적 고증에 대해 문제를 삼는데 저희들끼리는 그럴려면 '다큐멘터리를 찍어야지 왜 드라마를 찍냐'는 말을 한 적도 있다"며 "배우들은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연기에 더 충실해야된다고 생각한다"라는 멘트는 역사왜곡논란에 기름을 부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정치적인 해석까지 결부되면서 '기황후'에 대한 역사왜곡논란은 점차 가열되고 있다.
기황후는 고려 말, 공녀로 원나라에 건너가 차 따르는 일을 하다 1339년 순제의 아내가 되어 원 제국 황후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실존 인물이다.
원나라 최고 권력자가 된 기황후는 고려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고려사』에 따르면 기황후의 오빠 기철은 원의 황후가 된 누이의 세력을 등에 업고 패악을 일삼았다. 기황후 스스로도 오빠 공민왕을 제거하고 충선왕의 셋째 아들 덕흥군을 왕으로 세우려 고려를 침공했다 실패한 전력이 있다.
그동안 시대물을 통해서 재조명된 인물들은 모두 역사적으로 존경을 받거나 업적이 있는 긍정적인 인물이었던 반면 '기황후'는 역사적 평가가 부정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를 통해서 '기황후'의 일대기는 미화될 것이기에 이러한 우려로 인해서 역사왜곡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을 안고 출발한 '기황후'는 비록 국내에서 시청률 흥행에 실패를 하더라도 중국 등 해외에서는 성공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국내에서 '7광구'의 혹평을 받았던 하지원이지만 해외에서는 선전을 하였던 이력을 고려하면 그 가능성을 더욱 높게 봐줘야 할 듯 하다.
모든 것이 자본주의 논리로 우선시될 수는 없겠지만 어떤 일에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고 볼 때 너무 부정적으로만 몰고 가는 것도, 그 반대로 너무 긍정적으로만 보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이라 본다.
역사적으로 생몰연대조차 불분명한 '기황후'가 우리나라 출신의 인물이라는 것을 고려해보면 중국에서 이를 극화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테고, 그리고 그러한 연인이 자신의 나라의 실질적 권력자였다는 것을 다루는 것도 껄끄러운 일일 것이라 보여진다.
역사왜곡논란의 시위는 이미 당겨졌고, 드라마는 시작하였다.
이제 판단을 철저하게 시청자들의 몫이 될터이다.
※ 본 포스팅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을 위해서만 사용되었으며, 그 저작권 및 소유권은 MBC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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