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용, 아이큐 210의 이유
김웅용 교수의 아이큐는 210으로 세계 최고의 지능 지수 보유자라 합니다.
물론 논란의 여지가 남겨져 있긴 하지만 그러한 논란 보다는 '여유만만' 출연을 계기로 화제가 되고 있는 김웅용 교수의 인생 발자취를 되짚어 보고자 하는 것이 이 포스팅의 목적입니다.
대학 입학 시절
김웅용 교수는 건국대와 이화여대 교수이셨던 부모님에게서 1963년에 태어납니다.
생후 6개월에 간단한 문장을 말할 수 있었고, 11개월 때 천자문을 이틀 만에 떼었다 합니다.
3살 때 중학교에 입학하였고, '꼬마천재 김웅용'으로 유명해져 외신기자들 사이에서 외국어를 자연스럽게 터득하여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를 하게 되었다 합니다.
미국 유학길에 오르는 꼬마천재 김웅용
1967년 후지tv에 출연을 하여 교수가 낸 미적분 문제를 풀어내었고, 일본에서 아이큐 테스트를 받았는데, 당시 아이큐 테스트 만점이 200점이라서 측정불가가 나와 나이가 어린 관계로 보너스 점수로 10점을 더 받게 되어 이후 아이큐 210의 꼬마천재로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5살에 한양대 청강생 자격으로 물리학을 공부했고, 8살 때 미국의 NASA 핵물리학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습니다.
김웅용 교수의 회고에 의하면 나사 시절에 주로 적분을 계산하는 일을 맡았고, 자신의 인생에서 힘든 시기였다 밝히고 있습니다.
아마 나사에 더 머물렀다면 자살했을 지도 모른다고 하며 16살에 나사를 뛰쳐나와 한국으로 귀국을 하게 되죠.
이렇게 좋은 머리를 가지고 있으면 그 비범함 만큼이나 국가와 사회에 기여를 하는 인재로 성장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이러한 천재들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각이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현재의 천재라 할 수 있는 송유근 군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일테죠.
말하자면 김웅용은 당시 송유근보다 더 뛰어난 꼬마신동이었다 할 수 있을텐데 이러한 기대에 못 미치기에 그를 일부에서는 '실패한 천재'로 보기도 합니다.
신한대학교 교수 김웅용
실제로 송유근 군이 뛰어난 재능을 보이면서 두각을 나타낼 때 김웅용 교수를 이렇게 비교하기도 하였지요.
그 때 김웅용 교수는 잘 살고 있는 자신을 그렇게 비교하는 것이 못마땅하게 느껴졌을 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이런 천재들이 스티븐 호킹이나 아인슈타인처럼 뛰어난 업적이나 학문적인 성과를 내주길 기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한 것이 개인의 행복보다 우선될 수는 없겠지요.
아마 김웅용 교수가 그러한 행복에 대한 지론이 없었다면 진짜 비운의 천재가 되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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