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하 파산 이유,빚보증과 사업실패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이은하가 거액의 빚을 감당하기 못해 개인파산 절차를 밟고 있다 합니다.
이은하가 개인파산 절차를 받게 된 이유는 건설 관련 업체를 운영하던 아버지의 빚보증과 이은하 본인의 엔터테인먼트 사업 실패로 10억 원 안팎의 빚을 지게 되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이은하는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법에 파산 신청을 냈고, 이에 따라 법원은 이은하에게 파산을 선고했다고 하네요.
요즘 tv 활동도 하지 않은지 오래되어서 근황이 궁금했는데 이렇게 좋지 못한 소식을 전하게 되었군요.
이은하는 1961년생으로 이은하의 아버지는 유명한 아코디언 연주자였습니다.
그래서 음악을 이른 나이에 접했고, 아버지로부터 트로트를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변성기를 거치면서 목소리가 허스키하게 변하자 소울 팝 장르로 전향하였고,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만 12살 나이인 1973년에 '님마중'이란 곡으로 가수 데뷔를 합니다.
1976년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 유명세를 타면서 1978년 '밤차'라는 곡과 찌르기 춤을 선보이면서 디스코 여왕으로 등극을 하게 됩니다.
이후 1979년 이은하 본인이 작사한 '아리송해'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KBS 가수왕상을 수상합니다.
이은하가 활동하던 시기는 김수희와 헤은이가 1980년대 디바 트로이카로 자리를 매김했는데요.
1986년 이은하가 작사하고 고 장덕이 작곡한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라는 발라드 곡도 큰 인기를 끌었죠.
이은하가 뜨고 나서 일이 잘 풀릴 때는 여기저기서 찾는 곳이 많았었습니다.
가수로써의 인기를 바탕으로 영화도 여러 편을 하기도 했죠.
'영심이','돈키호테 형래와 산쵸 특공대'와 같은 영화들이죠.
1989년 전영록이 작사 작곡한 '돌이키지마' 이후 이은하는 점차 대중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이은하는 10대 가수상은 9년 연속으로 수상을 하였습니다.
그 이후의 활동을 살펴보면 2007년 가수로 복귀하여 실제 생년월일을 주민등록상으로 1958년에서 1961년생으로 정정하였고, 2012년에는 재즈분야에 음악적으로 전향하였다고 합니다.
2012년 JTBC의 한 방송에 출연을 하여서는 결혼까지 생각한 사람이 있었으나 결국 실패를 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24살 때 첫사랑에 실패를 한 뒤 한 남자를 만나게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결혼을 생각하지 않았고 아기도 낳지 않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3년 간 설득했으나 결국은 실패를 했다고 하네요.
이은하: "지금은 남자와의 사랑에 대해서 마음을 비웠다. 팬들의 사랑을 얻는 대시 남자와의 사랑은 얻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최근 송대관의 소식이나 혜은이 남편의 소식,그리고 나훈아의 소식들을 보면 웃세대의 가수들이 순탄치 못한 인생을 사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은데요.
빚보증과 관련하여 파산을 하게 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빚보증은 정말 피해야 할 두려운 것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네요.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