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모리 아키나,베스트텐의 여왕
오늘은 일본의 유명 인기 가수인 나카모리 아키나의 히스토리를 살펴볼까 합니다.
1965년생인 나카모리 아키나(中森 明菜, なかもり あきな)는 16살인 1981년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승하면서 다음해인 1982년 '슬로우모션'이란 곡으로 데뷔합니다.
사진 출처: 구글 검색
나카모리 아키나는 13살 때부터 이 오디션을 보았고, 야마구치 모모에의 '몽선안내인'이란 곡을 불러 우승을 하였는데, 이로 인해 제2의 야마구치 모모에란 수식어를 얻기도 했습니다.)
나카모리 아키나는 1980년대 일본에서 가장 유명했던 가수 중의 한명으로 히트곡은 '소녀A', '세컨드 러브', '1/2의 신화', '장식이 아니야,눈물은', '금구', '미 아모레', 'DESIRE', '십계'. '난파선', 'Dear Friend', '키타 윙' 등이 있습니다.
전여옥이 지은 '일본은 없다'를 보면 나카모리 아키나의 가족이 재일동포로 한국계라는 주장이 있는데, 나카모리 아키나는 이에 대해서 어떠한 언급도 한 적이 없습니다.
나카모리 아키나는 청순한 외모와는 다르게 낮으면서도 파워풀한 목소리, 풍부한 감정처리가 매력있고, 청순과 츳바리(つっぱり,불량청소년)를 오가는 컨셉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나카모리 아키나는 1983년 NHK에서 주최하는 홍백가합전에 첫 출연하면서 그 인기를 증명하였습니다.
나카모리 아키나는 일본 레코드 대상을 20살에 수상하면서, 최연소 수상자가 되었고, 이듬해 다시 한번 대상을 거머쥐며 2년 연속 수상한 최초의 여가수가 됩니다.
나카모리 아키나는 오리콘차트에서도 1983년, 1985년, 1986년, 1987년 총 4번의 연간 세일즈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습니다.
이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합니다.
나카모리 아키나는 '사랑 여행'이란 영화 작품을 하면서 콘도 마사히코와 스캔들이 나게 됩니다.
나카모리 아키나와 콘도 마사히코 사이에 교제 사실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은데요.
중요한 것은 나카모리 아키나와 라이벌 관계에 있던 마츠다 세이코와 콘도 마사히코가 뉴욕에서 파파라치컷이 찍히면서 나카모리 아키나가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되고 이로 인해서 자살시도까지 하게 됩니다.
불화설이 있던 나카모리 아키나와 콘도 마사히코는 이 사건을 계기로 약혼설,결혼설까지 있었으나 결국은 콘도 마사히코가 찌질한 모습을 보이면서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이 사건 이후 나카모리 아키나의 인기는 주춤하였고, 재기하기까기 꽤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됩니다.
그리고, 재기하기까지 기획사 문제라든가, 소송문제까지 겹치게 되면서 매우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40대에 접어 들면서 나카모리 아키나는 건강상의 문제로 활동을 무기한 정지하기도 하는데요.
나카모리는 도쿄 음악방송 프로그램 '더 베스트텐'에서 1982년부터 1989년까지 총 223주간 프로그램에 출연하였고, 23곡이 베스트10에 진입하여 가장 오랫동안 1위를 기록하여 '베스트텐의 여왕'이란 수식어를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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