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장르: 미스터리, 스릴러, 다크 판타지, 공포, 오컬트
감동: 장재현
제작: 강혜정, 류승완, 류승범
출연: 이정재, 박정민, 이재인, 정재영, 진선규, 이다윗, 유지태
2019년에 공개된 이 미스터리 공포 영화는
장재현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작품으로,
그의 데뷔작 '검은 사제들' 이후
4년 만에 배출된 작품입니다.
영화의 제목인 '사바하'는
한자로는 '娑婆訶'로 표기됩니다.
이 단어는 사실상
범어 진언에서 파생된 'Svaha'를
한자로 표현한 것으로,
사전적 의미는 '잘 말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대체로 진언 이후에 사용되며,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사바하'는 천수경의
첫 부분(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과
반야심경의 마지막 부분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에 등장하여,
불교도들에게는 익숙한 단어입니다.
이는 기독교의 '아멘'과 같은 의미를
공유하는 단어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뜻 |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뜻 |
修理修理 摩訶修理 "호쿠스 포쿠스 티디부스"라는 표현은 미사 중에서 사용되는 'Hoc est enim corpus meum(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라는 문구가 원래로 간주됩니다. 그렇게 보면, 이 문구는 사실상 천수경이라는 불경에서 발생된 진언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천수경은 한국에서 반야심경과 함께 가장 많이 읽혀지는 불경 중 하나입니다. 그 천수경의 첫 문구는 산스크리트어 진언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sri sri maha sri su sri svaha)'로 시작합니다. 한국불교학회의 산스크리트어 표기법에 따르면 이는 '쓰리 쓰리 마하 쓰리 쑤 쓰리 쓰와하'로 음역됩니다. 여기서 '쓰리'는 원래 인도의 비슈누의 아내이면서, 인도와 불교문화권에서 여신으로서 널리 숭배되고 있는 라끄슈미 혹은 락슈미를 가리킵니다. '마하'는 '커다란', '위대한', '뛰어난', '묘한' 등의 의미를 지니며, 그 중에서도 특히 인물 이름 앞에 붙을 때는 '위대한'으로 번역됩니다. '쑤'는 인도의 성산인 수마트라산을 축약한 표현이며, 중국과 한국에서는 '수미산'으로 불립니다. 따라서 이 진언은 '락쉬미여, 락쉬미여, 위대한 락쉬미여, 수미산의 락쉬미여, 원만히 이루어지게 해주소서'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진언의 이름은 '정구업진언'으로,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이 하는 주문'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산스크리트어 해석에서 '수리(sri)'는 '좋다/깨끗하다/기쁘다'를 의미하고, '마하(maha)'는 '크게' 혹은 '아주'를 의미합니다. '수수리(susri)'는 '수리(sri)'에 '묘하다' 또는 '지극하다', '좋다'라는 뜻의 접두사 '수(su)'가 붙어 '묘하게 좋다'라는 뜻을 갖습니다. '사바하(svaha)'는 '원만해지다', '성취하다'라는 뜻으로, 진언의 마지막 부분에 붙는 종결구입니다. 이를 종합하면 '깨끗하구나, 깨끗하구나, 아주 깨끗하구나, 묘하게 깨끗하구나, 모든 것이 원만히 성취되리라'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천수경은 불교계에서 매우 흔히 읊혀지는 문구로, 그 첫 부분인 '수리수리 마하수리'는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들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마하수리' 부분이 '마술'처럼 들린다는 이유로, 이 문구는 일반적으로 어떤 주문을 읊을 때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원래의 산스크리트어 표현에서 멀어져, '수리수리 마하수리'보다는 '수리수리 마수리'라는 축약형이 더욱 일반적으로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표현에 대한 영향력이 아직도 남아 있어, 이 문구를 읽을 때는 대개 '수리수리 마-아수리'처럼 '마' 부분을 늘려서 읊는 경향이 있습니다. |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드히 스바하(gate gate pragate prasam.gate bodhi svh)'라는 문구는 산스크리트어 원음으로, 이는 일반적인 문장이 아닌 진언 혹은 주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진언이나 주문은 대개 번역되지 않지만, 이 문구는 예외적으로 때때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진언이란 몸과 마음, 그리고 호흡이 깊은 명상을 통해 완전히 하나가 되었을 때, 그 상태에서 나오는 소리를 의미합니다. 깊은 명상 상태에서는 마치 어항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를 관찰하는 것처럼, 사물의 본질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의 중심 인물인 관세음보살은 이러한 방법으로 진리를 깨달았고, 세상을 투명하게 보았습니다. 그는 이를 통해 모든 고통을 극복하고,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이 진언을 외쳤습니다. 반야심경의 주인공인 관세음보살은 진리를 깨닫고 세상을 통찰한 후에 모든 고통을 이겨냈습니다. 그는 완벽한 깨달음에 도달하여 그 기쁨을 이 진언을 통해 표현하였습니다. '아제(gate)'는 '가버림'을 의미하며, 이는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로, 혼란에서 벗어나 고요한 명상으로 가버린 것입니다. '아제아제(gate gate)'는 두 번 가버린 것을 의미합니다. '바라아제(pragate)'는 깊고 먼 곳, 즉 부처님의 세계까지 가버린 것을 말합니다. '바라승아제(prasam.gate)'는 완전히 부처님의 세계에 도달한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는 '가버리고 더 가버리자! 부처님의 세계로 가버리자! 완전히 부처님의 세계로 가버리자!'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모지 사바하(bodhi svh)'는 '모지(bodhi)'가 깨달음을 의미하고, '사바하(svh)'는 기쁨과 행복에서 나타나는 소리, 즉 '할렐루야'와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이를 좀 더 자유롭게 표현하면 '만세!'나 혹은 젊은 세대들의 표현으로는 '아싸!'로 번역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지 사바하'는 '깨달음이여, 만세!'라는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결국 이것은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로, 이 경전의 핵심인 '공(空)'을 이해하고 깨달은 희열을 진언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자, 가자! 부처님의 세계로 가자! 완전히 부처님의 세계로 가자! 깨달음이여, 만세!' |
불교에서 '미륵보살'은
'미래에 성불하여 사바세계에서
중생을 구제할 보살'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이는 '미륵보살'이라는 단어가
'내세에 성불'이라는 의미를
줄여 표현한 것입니다.
미륵보살은 인도의 브라만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받아
미래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은 후,
도솔천으로 올라갔다고 전해집니다.
미륵보살은 '사보살'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사보살'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법화경에서 언급된
'상행보살', '무변행보살', '정행보살', '안립행보살'이며,
두 번째는 태장계 만다라에서 대일여래를 둘러싼
'보현보살', '문수보살', '관세음보살', '미륵보살'입니다.
미륵보살은 이 중 두 번째 그룹에 속해
대일여래를 둘러싼 네 보살 중
하나를 의미합니다.
불교에서 미륵보살은 미래의 부처로,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56억 7천만 년이 지날 때,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은
보살들이 거주하는 도솔천에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올 것이라고 합니다.
미륵보살은 이때까지
도솔천의 보살로서 중생을
가르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이유로 미륵보살은
보살이라고도 부르며,
또한 부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해석은 복잡한데,
미륵삼부경 중 '미륵하생경'과 '미륵대성불경'에서는
미륵보살이 수기를 받고 도솔천에 있다는 설을,
'미륵상생경'에서는 석가의 제자 미륵이
미래의 부처라는 설을 따릅니다.
하지만 현재 불교계에서는
석가모니를 더욱 존경하는 관습으로 인해,
미륵보살과 미륵불을 혼용해서 사용합니다.
석가모니 부처가 입멸한 후
제1차 경전 결집이 이루어졌을 때,
경들을 암송했던 아난다(석가모니의 사촌형제)에게
장로들이 제기한 비판 중 하나는
"석가모니 부처에게
이 세상에 1겁(힌두교 43억 2천만 년) 동안
머물러 주실 것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열반경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는 입멸을 앞두고 아난다에게
"사신족을 닦은 자는
1겁 동안 이 세상에 머물 수 있다"고 말했었지만,
아난다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
부처에게 그러한 요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아난다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석가모니 부처가 미륵 부처의
존재를 예언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난다가 석가모니 부처에게
1겁 동안 머물러 주시라는 요청을
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마라 파피야스에 의해
마음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또 다른 이유는 석가모니 부처가 생전에
"모든 것은 변하는 것이니
어떤 것에도 매달리거나
그것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석가모니 부처가
미륵 부처가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제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이에 대한 아난다의 요청은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과
미륵 부처에 대한 예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또한, 미륵 부처가 하생할 장소는
용화수 아래라고 전해져 왔습니다.
이에 따라, 미륵 부처를 신앙하는 법당은
특별히 용화전 또는 미륵전이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불상들은
가부좌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미륵 부처는 명상을 통해
미래의 중생을 구제하거나,
설법하러 가기 쉬운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반가상이나 입상,
혹은 걸터앉은 모습의 좌상으로 주로 표현됩니다.
또한, 미륵 부처는 입상으로 표현될 경우
다른 보살들에 비해 키가 크게 표현됩니다.
<미륵하생경변상도>에서 보여지는 미륵의 모습은
일반적인 부처의 표현과는 크게 다릅니다.
미륵이 세상에 나타나면,
그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생명체들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미륵을
미래의 구원자로 묘사하며,
때로는 석가모니보다
더 뛰어난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런 이유로, 불교가 전파된 여러 나라들,
특히 한국에서는 미륵 신앙이 크게 발달했으며,
때때로 창조주와 동일시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미륵이
세상이 망한 후에야
등장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해석으로 인해,
미륵은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
등장하는 존재로 생각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과거부터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이 미륵을 사칭하였고,
이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도 삶이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미륵에게 조상을 천도해야
행운이 따를 것이라며 설득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연기'는 '괴로움'의 원인을
찾아가는 12가지 단계를 의미합니다.
이는 '괴로움'의 근원을
찾아보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연기'는
모든 승려들이 '괴로움'의 근본 원인을
탐구하려는 연구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空) 사상 역시
이 '연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모든 현상이 수많은 원인과 조건들이
상호작용하여 형성된다는 것,
그로 인해 독립적이고
자존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
그리고 모든 조건들,
원인과 결과들이
상호 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이것이 '연기'의 핵심입니다.
이 개념은 불교의 핵심 사상인
무상, 고, 무아의 삼법인을
구성하는 기반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연기'는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바하'의 대사]
이는 상호 연결된 관계를 통해
독립적이고 변하지 않는 실체의 존재를
부인하는 시각입니다.
'연기'는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한
중생들이 겪는 삶과 죽음의 과정을
인과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석가모니는 이 12연기를 역으로 추적하여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길을 찾았고,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 열반을 이루었습니다.
[사슴동산 김제석 교주가 이루려고 했던 연기의 단계]
숫타니파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원시 숫타니파타의 4장과 5장에서의 연기(6연기)는
명색 - 접촉 - 쾌불쾌 - 욕망 - 좋아하는 대상(집착) - 투쟁과 논쟁의 순서로 설명되며,
이 과정에서 괴로움의 근본 원인은 명색에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후대의 12연기에서는 괴로움의 근본 원인을
'무명과 행'으로 보는 견해가 등장합니다.
바보 같은 생각(무명)과 행동(행)으로 인해
올바른 생각과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되어
괴로움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기'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통해
혼미의 인과를 12단계로 나눈 것으로,
불교의 가장 기초적인 교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연기는 불교에서 인식과정을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각 단계를 간략하게 다시 써볼게요.
1) 무명(無明, avidyā)은
'지식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지식은 '베다'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학습을 통해 전해진 명확한 진리'를 뜻합니다.
2) 행(行, saṃskāra)은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행동들이 쌓여
형성된 '카르마(업)'을 말합니다.
행은 '해온 것들이 쌓인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3) 식(識, vijñāna)은
'어떤 것을 다른 것과
구분할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구분해서 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4) 명색(名色, nāmarūpa)은
'마음이 외부 대상에 주의나
관심을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자로는 '물질에 이름을
붙이는 것'을 뜻합니다.
5) 육입(六入, ṣaḍāyatana)은
'감각 기관으로서의 몸'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몸을 통해
외부 대상과 상호작용합니다.
6) 촉(觸, sparśa)은
'접촉'을 의미합니다.
7) 수(受, vedanā)는
'접촉했을 때의 느낌'을 말합니다.
좋았는지, 나빴는지,
또는 그 어느 쪽도 아니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8) 애(愛, tṛṣṇā)는
'갈증'이라는 뜻으로,
'(좋은 느낌이 드는 것을) 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욕구나 욕심을 가리킵니다.
9) 취(取, upādāna)는
'(원하는 것을 충족시킨 후에도)
계속 원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집착'을 의미합니다.
10) 유(有, bhava)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집착으로 인해
원하는 것이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11) 생(生, jāti)은
'어떤 것이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로부터
새로운 관념이 태어납니다.
'나'라는 '아트만'도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12) 노사(老死, jarā-maraṇa)는
'태어난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며 사라짐'을 의미합니다.
모든 관념과 '나'라는 '아트만'도
시간이 흐르면 사라집니다.
이로 인해 '있다'는 생각이
허상임이 드러납니다.
박 목사는 태백 사슴동산에서 입수한
지국천왕(역할: 지승현)의 경전을 해석하다가,
여러 차례 뱀을 죽여야 한다는 구절이 나오자,
해안 스님(역할: 진선규)에게
뱀이 결국 악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지 묻습니다.
이에 스님은 "불교에서는 악이라는 개념이 없다.
오직 집착과 욕망으로 인한
번뇌만 있을 뿐"이라고 답합니다.
이 말은 불교 세계관에서 번뇌를 가진 존재는
절대로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깨달음을 얻어
불사의 존재가 된 김제석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사바하'에서는 불교의 연기설이 계속 언급됩니다.
'짐승이라도 부처의 행위를 하면 부처가 될 수 있고,
깨달음을 얻은 자라도 짐승의 행위를 하면
부처의 모습을 잃게 된다'는 말처럼,
불교에서는 고정된 선악이 없습니다.
모든 존재는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의존하며 영향을 주고 받아 존재합니다.
이것이 바로 연기설입니다.
영화에서 반복되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이 없어진다'는 말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무언가에
집착하거나 욕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에서 보듯 불교의 연기설은
총 12개의 항목으로 정리되어 있고,
영화에서 12개의 손가락이
부처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것은,
12항의 깨달음을 얻으면
그것이 12개의 손가락으로 나타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김제석이 1999년에 태어나는 존재로
인한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그것은 우주의 법칙에 따른 것이므로
김제석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김제석이 예언을 듣는 순간,
그의 눈빛에 흔들림이
있었다는 티베트 고승의 말처럼,
김제석은 예언을 들으며
삶에 대한 집착과 욕망이 생겨
깨달음의 길을 이탈하게 됩니다.
김제석이 예언을 듣고 생긴 시험,
즉 번뇌를 이겨내고
살생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았다면
진정한 미륵이 됐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김제석은 살생하지 말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저버렸기 때문에,
그는 짐승이 되어
타락하게 되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철저히 악으로
태어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광목이 동생을
지키기 위해 행동했던 것처럼,
또한 김제석의 말에 속아 악행을
저질렀던 광목(나한)에게는 어머니처럼,
매일 밤 자장가로 위로를 주었던 것처럼,
'그것'도 역시 16년 동안
자신의 내면에 깃든 악과
대립하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었을 것입니다.
'왜 나는 이렇게 악한 존재로 태어났을까.
무엇이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드는 걸까.
그리고 이 세상은 어떤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걸까.'
이 질문들은 약간만 변형시키면,
수행자들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것'을 절대적인 악으로만 보면,
'그것'이 내뱉는 괴성과 울부짖음은
우리에게 악마의 비명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불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것'도 악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부처가 될 수도 있는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것'이 매일 밤 내뱉던 괴성은
16년 동안 겪어온 고통스러운
수행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16년 동안 괴성을 지르며 울부짖은 것은
죽어가는 소녀들의 비극 때문이었습니다.
광목이 미륵이 된 '그것'과 마주쳤을 때,
"나는 너희들이 피를 흘릴 때
함께 울고 있던 존재다"라는 말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너희들이 피를 흘릴 때'라는 부분은
사천왕이 1999년에 태어난 여자아이들을
살해했던 사실을 나타내며,
'함께 울고 있던 존재다'라는 부분은
고통받으며 울부짖던 '그것'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김제석은 네충텐파의 예언에 따라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난
1999년생 여자아이들을 살해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그것'은
불공평하게 죽어가는 소녀들과
해탈하지 못한 존재들을 위해
괴로움을 표현하며 울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까지 '그것'은
무시무시하고 불길한 존재로 그려지므로,
관객들은 '그것'의 이런 울부짖음을
악마의 울음소리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것과 금화, 쌍둥이 자매의 주제는
성경의 '에서와 야곱 이야기'에서 착안했습니다.
창세기 25장에서,
이삭의 쌍둥이 아들인
에서와 야곱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배 속에서 싸움을 벌였습니다.
에서가 장남, 야곱이 차남이었지만,
야곱이 태어날 때는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발꿈치를 잡았다'는 뜻입니다.
이를 연상시키듯, 작품 안에서 '그것'은
정나한에게 김제석의 발을 잡으라고 지시합니다.
에서는 '그것'과 같이 털이
무성하고 염소와 닮았기에,
야곱은 염소 털가죽을 이용해
에서로 변장하기도 했습니다.
쌍둥이 자매는 부처님 오신 날인
1999년 5월 22일에 태어났고,
그들의 어머니는 자매를 출산한 후
1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는 석가모니 부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석가모니를 낳은 후 1주일 만에
세상을 떠난 이야기와 일치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것'이 부처이자
김제석의 대립자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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