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블로그 편집장입니다.
오늘은 에드 시런과 에미넴의
공통분모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에드 시런은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입니다.
에드 시런은 어쿠스틱 기타와 힙합이라는,
서로 반대되는 악기와 장르를
결합하는 독특한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어쿠스틱 기타를 기본적인 베이스로 활용하면서
팝음악, 소프트 록, 발라드, R&B,
그리고 심지어 힙합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그의 유연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의 노래들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와 함께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선보이는 것으로,
그의 독특한 음악적 표현을
대표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드 시런은 예술가로 이루어진
가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며
현재 대학에서 예술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문화 PR 전문가로
에드의 아버지와 함께
아트 컨설팅 회사인 'Sheeran Lock'을 창립했으며,
현재는 보석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형, 매튜는 TV나 영화 등에서
사용되는 클래식 음악을 작곡합니다.
에드 시런 자신도 어릴 적에
피아노와 첼로 등의 클래식 음악을 배웠습니다.
그는 밥 딜런, 에릭 클랩튼 등의
음악을 들으며 싱어송라이터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그의 특이한 머리색(붉은색 머리카락)과
의료사고로 인한 말더듬이로 인해
학교폭력에 시달렸습니다.
다행히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에미넴의
'The Marshall Mathers LP' 앨범을 사주었고,
이를 통해 그는 말 더듬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2024년 1월 14일에 방영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어졌습니다.
또한 그가 12살 때 아버지와 함께
더블린에서 데미안 라이스의
콘서트를 관람했습니다.
그들은 콘서트 후 식사를 하러 갔는데,
우연히 데미안 라이스가
같은 식당에 들렀습니다.
그때 데미안이 에드에게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라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 후 13살 때부터 에드는
본격적으로 버스킹을 시작했습니다.
2008년에는 집을 떠나 노숙생활을 하며
길거리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그는 이틀 동안 버킹엄 궁전 외부의
아치형 공간에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는 메이저 레코드 회사와
계약을 앞두고 있었지만,
그들이 그의 머리색을 변경하고
제임스 블런트 등의
대중적인 음악을 따라 만들 것을 요구하여
결국 계약하지 않았습니다.
이 경험은 후에
'You Need Me, I Don't Need You'라는
곡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흥미를 보인 에드 시런은
기타 연주와 작사를 시작하였고,
2005년에는 녹음 작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2008년부터는 런던에서 음악 활동을
이어가며 커리어를 쌓아나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도전은
2010년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단지 기타 한 대만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가,
하루 종일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가수 제이미 폭스의 주목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로부터 스튜디오에서
무료로 녹음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를 통해 그는 유튜브 등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게 되었고,
2011년에는 첫 번째 메이저 싱글
'The A Team'을 공개하게 됩니다.
2011년 'The A Team'이
큰 히트를 기록하면서
그는 성공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 후 발매된 앨범들도 모두 성공적이었고,
그는 아델과 함께 2010년대를 대표하는
영국의 솔로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두 곡이 빌보드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그의 성공은 2017년에 이르러
5등급 대영제국 훈장(MBE)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이로써 그의 이름 뒤에는 'MBE'라는
칭호가 추가되게 되었습니다.
'Shape of You'는 에드 시런의
가장 큰 히트곡으로,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60억을 넘어서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는 조회수 30억을 넘긴 뮤직비디오를
3개나 갖고 있는 유일한 가수입니다.
이 곡은 국내 음원차트인 멜론에서도
6월 월간차트 5위를 차지하며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더불어 팝송 한정 노래방 인기곡 차트에서는
'She's Gone'을 압도하며
2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특히 2017년 42주차에는
국내에서 1억 스트리밍을
달성한 팝송이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한국에서 1억 스트리밍을 달성한 팝송은
애덤 러빈의 'Lost Stars'와
샘 스미스의 'I'm Not the Only One' 뿐이었습니다.
이 곡은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보였습니다.
첫 주에 1위로 데뷔한 이후로
33주 동안 한 번도 Top 10 밖으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에드 시런은 종종 자신이
엄청난 에미넴 팬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곤 합니다.
그는 자신의 우상인 밥 딜런을 비롯하여
에미넴을 매우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의 팬심은 어릴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그는 에미넴의 'MMLP' 앨범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그는 어릴 때 말더듬이 있었는데,
에미넴의 랩을 따라하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에미넴과
에드 시런의 컬래버레이션 여부가
큰 관심사가 되곤 했는데,
결국 그는 에미넴의 새 앨범
'Revival'에서 'River'라는 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앨범은 12월 15일에 발매되었고,
앨리샤 키스, 비욘세 등의
유명한 아티스트들이
피처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 시런의 참여가
가장 주목받았습니다.
에미넴은 미국 디트로이트의
자랑스러운 출신이며,
힙합 문화의 중심에서 활동하는
열정적인 MC이자 래퍼입니다.
힙합은 대개 흑인 아티스트의
전유물로 간주되어 왔으나,
에미넴은 이 장르에서
가장 성공적인
백인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힙합 아티스트를 넘어,
21세기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2000년대 이후
최다 음반 판매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의 본명은
마셜 브루스 매더스 3세(Marshall Bruce Mathers III)로,
이니셜인 'M&M'에서
파생된 에미넴이라는 예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일부 앨범에서 드러나는 캐릭터를
'슬림 셰이디(Slim Shady)'라고 부릅니다.
그의 상징인 좌우 반전된 E자(Ǝ)는
그의 앨범 커버나 콘서트에서 항상 볼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초기,
그는 서양의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이 겪는
사춘기와 불안감을 노래에 담아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동시에 학부모와
정치인들로부터 아이들의 교육을 망치고,
비행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 시절, 일부 미국과 캐나다 학생들은
에미넴의 CD를 몰래 사 듣다가
부모에게 들키면서 CD를
파괴당했다는 소문이 있었고,
유학생들 역시 에미넴의 음악을 듣다가
법정 대리인에게 들켜
혼났다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에미넴의 음반을
'완벽한 영어 욕 표현 교재'라고
농담하곤 했습니다.
에미넴은 어머니 데비 넬슨(1955~)과
그녀의 동네 밴드 멤버인
아버지 마셜 브루스 매더스 2세(주니어)(1951~2019)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으며,
만날 의사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심지어 그는 병원에서 다른 아기와
바꿔치기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 적까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에미넴의 공연장에 찾아와
그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였으나,
에미넴은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그의 거부의 이유는 아버지가
그가 태어난 지 6개월이 되지 않아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에미넴의 할머니에 따르면,
어린 시절의 에미넴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에 반해 아버지는
자신이 가족을
버린 적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족을 버렸다는 주장은
에미넴의 어머니인 데비 넬슨의
거짓말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아버지는 나중에 재혼하여
얻은 딸을 통해 에미넴에게
편지를 전달하였는데,
편지의 내용은 본인이 에미넴을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라
병원 측의 제약으로 인해 그를 볼 수 없었고,
바쁜 일로 인해 자주 찾아보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데비가 이를 이용하여
그를 매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주장에 따르면,
어느 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데비가 에미넴을 데리고 사라져 있었고,
그는 가족을 찾아 헤맨 끝에
포기하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였다고 합니다.
데비의 과거 행동을 고려하면
아버지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볼 수 있으나,
2020년에 발매된 앨범
'Music To Be Murdered By'의 수록곡
'Leaving Heaven'에서
에미넴이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며
그의 주장을 무시하는 것을 볼 때,
에미넴에게 그의 주장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5살 때 디트로이트로 이사한 에미넴은
어머니 데비 넬슨이 자주 우울증과
약물 중독에 시달리는 가운데
학대를 겪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My Name Is", "Kill You",
"Without Me", "Cleanin' Out My Closet" 등의
곡에서 어머니를 비판하고
욕하는 가사를 작성하였습니다.
특히 "Without Me"의
"엿이나 먹어, 데비!"는
그의 어머니에 대한
강한 비판을 표현한 대표적인 가사입니다.
그는 자주 이사를 하면서 학교를 전전하고,
작은 체구와 랩 가사를 중얼거리는
독특한 행동 때문에
학교에서 왕따와 폭행을 겪었습니다.
1981년 10월 15일에는 학교 화장실에서
일진 D'Angelo Bailey에게
폭행당해 9일 동안
코마 상태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미넴은
어머니를 피해 친척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고,
힙합에 열중하던 외삼촌 로니 넬슨을
유일한 친구로 삼았습니다.
그는 나중에 'MMLP2'의
"Legacy"에서 자신이 겪었던
학교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잘하는 성향을 가진 에미넴은
처음에는 만화가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11살 때 외삼촌 로니가
아이스 T의 음반을 선물해 주자,
비스티 보이즈와 같은
백인 힙합 그룹의 음반을 듣게 되면서
백인도 랩을 할 수 있다는
새로운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로니의 비트박스를 따라 랩을 하며
테이프에 녹음하게 된 그는
점차 랩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13살 때부터는 자신의 이름인
마셜 매더스의 이니셜을 따와
'에미넴'이라는 예명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점심시간에 랩 배틀을 벌이고,
자신의 힙합 그룹을 만들며
음악에 열중하다
학교를 자주 결석하였습니다.
마침내 17세 때,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본격적으로 래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에미넴이 래퍼로서
성공하고 싶다는 꿈을 얘기했을 때,
그때 이미 힙합을 접은 삼촌 로니는
그것이 '허망한 꿈'이라며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1989년부터 백인 래퍼인
카오스 키드와 함께
Bassmint Productions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흑인들 앞에서 공연하면서
Nigga라는 단어를 사용하자
야유를 듣게 되었는데,
이는 에미넴에게 큰 흑역사가 되었습니다.
초기에 녹음한 곡들의 가사나
스킬이 다소 조잡했던 것을 고려하면,
그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테이프를 아끼기 위해
한 번의 녹음으로
곡을 완성하는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Bassmint Productions는
그룹 이름을 Soul Intent로 바꾸고
계속 활동한 뒤에
1995년에 해체하였습니다.
언더그라운드에서의 그의 생활은
비난과 야유가 이어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노래를 들어줄
클럽을 찾아다니면서
디트로이트의 클럽을 누비기도 했습니다.
그가 무대에 오르기만 해도
욕과 '내려가라'는 외침을 들었다고 합니다.
한 번에는 큰 흑인에게
오렌지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삼촌 로니가
연애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사건이
1992년에 발생하였습니다.
이 충격으로 인해 에미넴은
한동안 음악 활동을 중단하였습니다.
그러나 딸 헤일리가 태어나며
아버지가 된 그는
다시 음악 활동에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삼촌 로니를 기리기 위해
에미넴은 자신의 왼팔에 문신을 하였습니다.
이 문신에는 버섯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약물 버섯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에미넴 자신은
약물, 술, 담배를 전혀 즐기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설립한 레이블
Shady Records의 직원들과
아티스트들에게도 술, 담배, 약물을
하지 않도록 권하며,
리아나에게도 그러한 조언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야유를 받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에미넴은 끈질기게 클럽을 찾아다녔습니다.
결국 그는 야유하는 관중들 앞에 서서
라임을 세 마디 뱉었고,
그로 인해 관중들이 잠잠해지자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는 점차 가사 쓰는 법과
비트 만드는 법을 익혔습니다.
그의 실력이 인정받아
1996년에는 첫 번째 앨범 'Infinite'를 발매했습니다.
그때 이미 그의 라임은 꽤 좋았지만,
플로우에는 그만의 특징이 없었고,
목소리가 고음으로 나온다 보니
'너무 어리게 들린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무명 래퍼로서 생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가사의 중심이 되어,
그의 가사는 상대적으로 순수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때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고,
그의 래핑 스타일은 동부의 래퍼들,
AZ와 Nas와 비슷하게 들렸습니다.
앨범은 '동부 래퍼들의 스타일을
표방한 삼류'라는 혹평을 받았고,
디트로이트에서 약 1000장 팔리고 말았습니다.
에미넴은 이 앨범이 팔린 후
뭔가 변화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 어떤 변화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 때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딸 헤일리의 분유와 기저귀를 사기 위해
맥도널드에서 일하면서,
라디오에서 이 앨범에 대한
악평을 듣고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Slit me,
나를 베어라'라는 문신을 새겼습니다.
그러나 1997년 LA의 지역방송이
주최한 랩 올림픽에서 2위를
차지하면서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그의 실력을 인정한
딘 가이스링어가 에미넴에게
데모 테이프를 받게 되었고,
이 테이프는 인터스코프 레코드로 전달되었습니다.
닥터 드레가 이 테이프를 듣고
에미넴을 발탁하게 되는데,
이 순간을 닥터 드레는 이렇게 회상하였습니다.
1998년, 에미넴이 닥터 드레와 계약을
맺은 초반부터 드레는
에미넴에게 체중을 줄이고
몸매를 가꾸라고 권했습니다.
에미넴과 닥터 드레의 첫 만남 때,
에미넴은 자원구호 단체에서 나눠준
노란색 후드 점프슈트를 입고 나타났는데,
이 모습이 닥터 드레에게는
바나나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이후 에미넴의 삶을 완전히 바꾼 앨범인
'The Slim Shady LP'의 전신이 되는 앨범
'Slim Shady EP'가 나오게 됩니다.
에미넴과 그의 어머니 사이의 관계는 복잡합니다.
에미넴의 말만 들어봐도
어머니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품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어머니는 에미넴의 주장을
부인하며 자신이 더 큰 피해자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누가 이야기를 진실로 말하고 있고,
누가 더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옹호하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어머니는 에미넴이 무명 시절에
자신을 비방하는 노래를 만들었을 때,
그것이 그저 인기를
얻기 위한 설정일 뿐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2013년에 발표된
'The Marshall Mathers LP2'의
'Headlights'에서는
에미넴이 이전에 비방했던 어머니를
용서하고 사랑한다며,
'Cleanin' Out My Closet'에서
어머니를 비방한 것에 대해
사과하는 가사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미국의 어머니의 날에 공개되었습니다.
곡의 제목인 '헤드라이트'는
서로 떨어져 있지만
항상 함께 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후로 에미넴과 어머니의 관계는
상당히 개선된 것으로 보입니다.
에미넴이 록앤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이 됐을 때,
어머니는 아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전하는 영상을 찍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와의 사이가 개선된 것과 대조적으로,
에미넴은 어린 시절에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마셜 매더스 주니어와는
평생을 불화 속에 지냈습니다.
아버지는 에미넴이
6개월 때 가족을 뒤로한 채 떠났으며,
에미넴이 유명해진 후에는
그를 만나려고 하거나 인터뷰를 통해
추억팔이를 하는 등
이중적인 행동을 보였습니다.
이런 행동은 에미넴에게는 위선적으로 보였으며,
그는 평생 동안 아버지와의 만남을 거부하고
그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019년 6월 26일에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일부에서는 "그래도 고인인데
용서해 주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에미넴은 'Music To Be Murdered By' 앨범 수록곡인
'Leaving Heaven'에서
분노에 찬 목소리로 아버지를
증오하는 가사를 랩 하며,
그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혔습니다.
에미넴과 그의 전 아내 킴의 관계는
복잡하고 열정적입니다.
두 사람은 10대 시절부터 사귀었고
결혼까지 했지만,
개인적인 문제로 이혼하기도 했습니다.
2000년 6월에는
킴이 다른 남자와 키스하는 것을 본
에미넴이 격분하여 권총으로
그 남자를 위협했으나,
다행히 탄창이 비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그 남자를 권총으로 폭행했고,
이 사건은 그의 노래
'Sing For The Moment'에도 등장합니다.
킴이 자살을 시도할 때
에미넴이 그녀를 직접 말리기도 했으며,
그녀는 그의 앨범에서 자주 언급됩니다.
에미넴이 유명해진 후 둘은
재결합하여 결혼했지만,
몇 개월 후에는
성격 차이로 다시 이혼했습니다.
이때 딸 헤일리의 양육권은
킴에게 넘어갔지만,
킴이 약물 소지로 체포된 후에야
에미넴이 양육권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에미넴과 킴은 복잡한 관계를 유지하며,
그가 그녀를 미워하는 만큼
그녀를 사랑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는 이 때문에 다시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심지어 이혼한 지 오래된 후에도
개인적으로 킴과 만나는 모습이
공개된 적이 있습니다.
현재는 그저 친구 정도의 관계라고 합니다.
2021년 8월 12일에는 킴이 자살을 시도했으나
목숨은 건진 상태라고
미국의 언론매체 TMZ가 보도했습니다.
팬들과 언론, 그리고 에미넴 본인은
그들의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고 있으며,
지금은 모두 킴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에미넴의 딸 헤일리는
그의 전 아내 킴과 매우 닮았습니다.
그녀는 2014년 9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시간 주립대학교 심리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유튜브에 그녀의 이름을 검색하면
축구공을 잘 다루는 헤일리의
영상을 볼 수 있는데,
그녀의 운동 신경은
평범한 사람들을 뛰어넘습니다.
에미넴은 딸을 매우 사랑하는 아버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딸 세 명 및 동료들만큼이나
그를 비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는 이미 유명한 사실입니다.
당시 50 센트와 자 룰 사이의 논란 속에서
50 센트를 지원한 것이
그의 딸 헤일리를 건드린 자 룰에 대한 반격이었습니다.
에미넴은 자신, 그의 어머니,
전 아내, 조지 W. 부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 등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가사를 쓰는데,
그는 이런 이유로
자신의 스튜디오에 딸을 들여보내지 않습니다.
앨범을 만들 때는
딸에게 들려주기 위해
비속어가 없는 버전을 별도로 제작하며,
딸과 떨어지는 것을 싫어해
해외 투어도 드물게 합니다.
또한 그는 "Lose Yourself"를 녹음할 때는
방문한 딸이 심심해하면 어쩌나 하여
세 번의 벌스를 한 번에 녹음했습니다.
모비가 에미넴에게 그의 가사가
딸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지적했을 때,
에미넴은 이를 비판으로 받아들여
"Without Me"에서 모비를 비판했습니다.
그 후에 호텔에서 에미넴과
그의 팀 D12의 멤버들이 모비와 마주쳤을 때,
에미넴은 딸 헤일리를 위해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D12의 한 멤버는 모비에게
"헤일리가 없었다면 당신을 그냥 때렸을 것"이라고
말하며 지나갔다고 합니다.
에미넴은 총 세 명의 딸을 둔 아버지지만,
헤일리만이 그의 친딸입니다.
그는 또한 이복동생 네이선의
법적 후견인 역할까지 맡아,
가족들을 혼자서 돌보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하게 발생하는 일입니다.
그의 딸들에 대한 태도에 대한
논란도 없지 않습니다.
그의 전 아내 킴은 그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딸에게 완벽한 아버지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녀는 에미넴이 자신의 인기를 위해
자신을 포장했다고 주장했지만,
그녀의 이런 주장은
그녀의 약물 중독과 불륜, 법정 공방 등으로 인해
신빙성이 낮습니다.
이에 대한 에미넴의 마음을 담은 노래로는
"Mockingbird", "When I'm Gone",
"Castle", "Arose" 등이 있습니다.
2014년에는 헤일리가 GPA 3.9라는
뛰어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표로서 연설까지 했습니다.
그녀는 후에 미시간 주립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에미넴이 가장 사랑하는 딸인
헤일리가 약혼을 하면서,
그에게는 첫 사위가 생겼습니다.
헤일리의 남편인
에반 맥클린톡은 일반인으로,
그의 나이와 세부적인 신분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결혼을 축하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일부 팬들은 "에미넴의 눈치를 보게 되다니"라는
유머러스한 반응도 있었습니다.
이로써 헤일리는 에미넴의 세 딸 중
첫 번째로 결혼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