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삶의 의미 찾는 아랑 아닐까?


'아랑사또전'은 20부작을 끝으로 시청자들에게 예정된 이별을 고하였습니다.
원혼인 아랑이 자신의 죽음의 진실을 캐는데서 시작한 이 드라마는 삶과 죽음, 욕망이라는 인간의 굴레를 통해서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시청자들로 하여금 아랑의 죽음의 진실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 작품 같단 생각이 듭니다.


욕망을 먹고 자라는 괴물이 된 무연이나 무연과의 인연 때문에 함께 소멸을 택한 무영도 인간의 굴레를 완벽하게 벗진 못했죠.
아랑은 자신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자 했지만 그 죽음의 진실 속에는 이서림이 택한 삶의 의미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죠.
이서림의 사랑은 사랑하는 정인인 주왈을 위해 목숨을 던진 헌신적 사랑이었습니다.
아랑의 죽음의 진실이 아랑 자신이었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타인을 위해 희생할 때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자 하는 '아랑사또전'식의 어법이 아닐까 싶어요. 


이서림과 주왈의 이뤄지지 않은 비극적 사랑은 외사랑이라고 한다면, 은오와 은오 어머니를 통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도 있습니다.
비록 은오의 예지몽처럼 어머니와 함께 하지는 못하겠지만 은오는 어머니의 영혼을 구원하였으니 자식된 도리를 다한 것이라 할 수 있죠.
무연에게 자신의 몸을 허락한 은오 어머니의 복수심이 낳은 비극적인 결말이죠.


비극적인 결말은 또 있습니다.
이서림의 시신을 벼랑에서 던지고, 처녀봉양을 위해 아랑을 칼로 찔렀다는 죄책감 때문에 주왈은 이서림을 던진 벼랑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주왈이 죽어서 무영의 빈자리를 메울 저승사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의 생전 업보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아마도 회개를 하였다는 점을 크게 반영해 준 처사라 생각되네요.
좀 신선한 반전이긴 했습니다.
무연이 죽고 나서 이승에서의 자신의 쓰임이 다했다는 허무감, 아랑에게 지은 죄를 스스로 용서할 수 없다는 주왈의 연기는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겠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신과 인간 


'아랑사또전'을 보면서 저는 옥황상제와 염라대왕이라는 신 캐릭터를 통해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봐야만 타당할까 생각했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모심잠으로 찔러야만 했던 결과가 은오의 말처럼 신인 옥황상제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여야만 하는 꼭두각시여서였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였다고 하였는데, 그 의지마저 신의 계획에 포함 되어있던 것일까요?


이 부분은 신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으로 남겠지만 은오와 아랑 그리고 옥황상제와의 관계를 고찰해 볼 때 신과 인간의 관계는 '약속'이라는 관점에서 봐야 할 것 같단 생각을 하였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모두 신과의 약속을 기록한 책이듯이 옥황상제의 설계 속에는 아랑과 은오와의 약속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죠.


은오는 아랑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건 생사부 관문에 도전을 합니다.
무영이 소멸되기 전 아랑의 죽음의 진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것인데, 아랑의 삶과 죽음이 기록되어 있는 생사부를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고 알려줬기 때문이죠.


'골든타임'의 이성민님이 생사부 수문장으로 나와서 눈이 번쩍 뜨여지더군요.
'아랑사또전' 최대반전은 이성민님의 카메오 출연이라고 해도....^^


정해진 시간 내에 나오지 못하면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은오는 이서림의 죽음의 진실을 찾기 시작하죠.
'아랑사또전'이 이 최종회만큼의 긴장감만 유지했더라면 더욱 재미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도 들게 하였습니다.

은오는 아랑의 죽음의 진실이 아랑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옆에 있는 자신의 생사부에 놀라게 됩니다.
죽은 자들만 있어야 할 생사부인데 말이죠.


은오는 아랑이 이 문제를 결코 풀 수 없을거란 사실에 분노하며 "옥황상제!"라고 외칩니다.
은오는 옥황상제와 염라대왕 앞으로 소환이 되고, 생사부에서 빠져 나오다 헤어진 아랑은 지옥으로 빨려 들어가기 일보직전입니다.
은오는 옥황상제에게 무연을 없앤 공을 언급하며 아랑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대신 희생하겠다 하죠.


염라대왕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아랑 대신 지옥으로 갈 것을 말합니다.
아랑이 지옥으로 빨려 들어가기 일보직전에 은오는 아랑을 대신해서 지옥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세월이 흐른 뒤 조그마한 남자애와 여자애가 꽃밭에서 만납니다.
남자아이는 방울과 돌쇠의 아들이고, 여자아이는 아랑의 환생이군요.
물론 남자아이는 은오의 환생입니다.
아마 아랑도 은오와 함께 하기 위해서 지옥문에 몸을 던졌나 봅니다.
지옥문에 빨려 들어가기 직전 아랑 자신이 정답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진실의 종은 울리지 않았으니까요.
뭐 애초에 진실의 종을 울릴 생각은 조금도 없었나 보네요.
나쁜 영감탱이 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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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 되돌아보게 하는 아랑사또전

돌아갈 날이 점점 다가오는 아랑은 은오를 위해 무연에게 몸을 바치고 은오 어머니를 찾아주려 하였지만 다행히 은오에게 제지 당하며 우려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랑의 자기헌신적인 이 일로 인해 두 사람의 사랑은 더 깊어지고 애절해진 듯 합니다.


돌아가기 싫다면서 아랑과 은오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고 말죠.
다시 만날 기약 없는 이별을 앞둔 연인의 심경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어요.


아랑은 이서림의 무덤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어준 이서림의 짧았던 삶이 의미 있는 삶이었지 않았나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 때 주왈이 나타나 자신의 과오를 무릎 꿇고 빌죠.
주왈은 무연이 지운 기억이 다 돌아온 것 같은데, 그 기억 속에는 주왈이 절대 기억하기 싫은 기억도 있죠.
그것은 자신이 현재 마음을 주고 있는 아랑이 자신이 죽인 이서림이었다는 기억과 무연의 말을 듣고 당시 이서림을 주왈이 마지막으로 처리하였다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한 번민으로 인해 주왈은 아랑에게 용서해달란 말도 못하고, '미안하다는 말조차 미안하다'며 죄책감을 느끼고 있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주왈과는 달리 끝까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도 있습니다.
최대감은 거덜과 함께 한양으로 압송되던 중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하면서 시비를 붙다가 결국은 거덜에게 칼을 맞아 비명횡사하고 맙니다.

'아랑사또전'은 어쩌면 아랑의 죽음의 진실을 찾는 여행을 따라 시청자들에게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의도도 있다 보여집니다.
이서림처럼 짧은 인생이었지만 타인을 위해 그래도 의미가 있는 삶이었나, 아니면 최대감처럼 타인의 고혈을 빠는 악랄한 삶이었나 하는...

각자에게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있다죠.
의미 없는 삶이란 없다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아랑처럼 언젠가 세상과 이별을 해야하는 인생들이죠.
그 때가 왔을 때 아랑처럼 그래도 의미 있는 삶이었다고 자신의 삶에 고마워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준기의 예지몽



은오가 짊어진 십자가는 무연에게서 어머니를 구원하는 일일 것입니다.
허나, 은오 어머니는 구원할 방도가 도무지 보이질 않습니다.
무연의 기가 약해져 돌아오게 된 어머니는 은오에게 자신을 가차 없이 베라고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을 구원해달라고 말하죠.
아들인 은오는 어찌되었든 어머니를 찔러야 하는 가혹한 현실입니다. 
현실에서 무언가 불가능해지게 될 때 우리는 신을 찾게 됩니다.
은오도 자신의 역량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해지자 신을 찾게 되죠.


꿈 속에서 은오는 아랑과 혼인을 하여 아이 둘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옥황상제의 설계 속에는 은오 어머니도 함께 있네요.
은오의 꿈 속에 나타난 옥황상제는 어머니를 구원할 방도도 알려줍니다.

 
현실에서 괴로워하는 은오를 달래는 한낱 일장춘몽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미래를 보여주는 예지몽일까요?
만약 예지몽이라면 예지몽이 실현되기 위해선 은오 어머니가 무연에게서 구원이 되고 아랑이 환생을 해야겠죠.


은오는 꿈을 꾼 후 결심을 합니다.
저승사자 무영과 함께 힘을 합쳐 무연과 한판 일전을 벌일 결심이죠.
은오는 모심잠으로 어머니를 찌릅니다.


무연이 은오 어머니의 몸에서 나와 아랑에게로 향하고...
아랑은 '싫어'하면서 비명을 지르죠.


무연은 아랑의 몸을 갖게 되어 불사지체를 이루게 될까요?
신민아의 악연 연기는 짧게라도 한 번 보고 싶은데...
막방까지 본방사수하게 만드는 '아랑사또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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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이 무연에게 몸을 내어주는 이유

여러분은 종교가 있으신가요?
뜬금 없이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무연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러 가는 아랑의 무거운 발걸음이 마치 십자가를 메고 못 박히러가는 예수의 모습 같다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욕망의 집합체입니다.
무연이 사랑을 얻기 위해 선녀의 신분을 버리고 인간으로써의 삶을 택한 것이나 아랑이 은오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여 무연에게 몸을 내어주려는 것이나 그 출발은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일테지요.


헌데, 출발이 같은 이 감정이 무연에게는 자신이 무언가를 가지기 위한 끝없는 욕망으로 변질이 된 반면 아랑에게는 자신의 모든 걸 내어줄 수 있는 숭고한 것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아랑이 무연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려는 것은 은오 어머니를 살려 은오가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도록 하려는 것이죠.
이 부분은 아랑의 자유의지이기도 하지만 뒤늦게나마 옥황상제가 자신을 불사지체로 만들어 죽음의 진실을 캐보라고 세상에 내려보내준 의도를 깨우친 것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신의 예정설로 해석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수도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운명을 알게 되었을 때 인간적인 고뇌를 하였을 것입니다.
아랑 또한 이러한 고민 끝에 자신의 예정된 길을 가기로 결심을 한 것이죠.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자기희생이고 남에 대한 배려입니다.
주인공 은오를 통해서 남에 대한 배려를 깨달아가는 캐릭터를 상징케하고, 아랑을 통해서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깨달아가는 캐릭터라고 해석해도 될 것입니다.

'아랑사또전'은 이러한 메시지를 갖게 됨으로써 20부작 작품 전체를 통해서 본다면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는 작품성을 획득해 나가고 있다 여겨지는데요.
아랑의 전설로부터 시작해서 무협, 추리, 공포, 오컬트, 코믹 뿐만 아니라 종교와 사회비판, 정치라는 옷까지 입은 퓨전판타지물로써 매우 독특한 소재와 신선한 시도를 지닌 작품이지만 결국에는 그 다양한 장르의 주인공이 인간이고, 그 인간의 삶과 인간의 욕망을 투영하고 있다는데 작품의 의의가 있다 할 것입니다.


아랑이 무연에게 몸을 내어주려 하는 것은 은오가 옥황상제에게 부채나 비녀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신의 안배에 의한 예정된 일...즉, 옥황상제의 설계에 따라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여겨집니다.
옥황상제는 아랑을 '미끼'라고 표현하였는데, 미끼를 물어야 낚시를 해서 뭔가를 건져올릴 것 아니겠어요?

무연 입장에서는 아랑이 옥황상제가 자신에게 던진 미끼란걸 알고 있지만 결코 포기하지 못할 매력적인 미끼이기도 하죠.
무연은 아마도 아랑의 몸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가장 소원하는 것을 이루게 될테죠.

만약 그렇다면...
이제 아랑의 불사지체의 몸 속에 욕망의 화신인 무연과 자기희생 상징인 아랑의 혼이 같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 속의 선과 악의 갈등으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옥황상제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사람의 마음이란 결국 인간 욕망에의 탐구가 아닐까 합니다.

불사지체의 무연, 신민아의 악연 연기가 기대되는 이유

 


스토리의 전개상 예상했던 바대로 최대감과 은오의 오래된 원한 관계가 마무리 되었다 보여집니다.
은오를 역모죄로 엮어 은오를 없애버리려 하였던 최대감은 오히려 은오에게 역공을 받아 그동안의 악행이 드러나게 되어 법의 준엄한 심판만을 기다리게 된 처지가 되었죠.
이렇게 역전이 된 이유는 은오가 옥에 갇히자 은오 라인으로 갈아탄 삼방이 은오 아버지의 힘을 빌어 은오를 구하는데 결정적인 조력자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무연을 등에 엎고 승승장구하였던 최대감이 무연과의 관계가 악화되었으니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무연의 말처럼 이제 맡은 바 캐릭터의 소임을 다하고 '쓸모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죠.
제 기대치를 말씀드리자면 최대감은 법의 심판으로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해 염라대왕에게 끌려가 지옥불에 고생하는 것이 좀 나와줬더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그러한 것이 나오지 않고 조속하게 결과가 마무리 되는 측면이 있어서 좀 아쉬웠어요.


이런 스피디한 사건처리는 2회분 만을 남겨 놓게 된 '아랑사또전'이 앞으로 남겨 놓은 이야기를 다 신민아의 악연 연기에 올인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앞서 살폈듯이 아랑은 무연에게 자신의 몸을 던질 각오를 하면서 은오에게 직접 밥도 차려주고 자신을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며, 사랑한다면서 마지막 편지를 남기고 무연에게로 가게 됩니다.


아랑은 한 번 가본 길이라 혼자 가도 되는 길을 굳이 주왈이 인도해줄 것을 요청하죠.
주왈은 아랑을 무연에게 데려가는 것이 내키지 않아 아랑을 말리다가 아랑이 이서림이었다는 기억을 찾게 되면서 충격을 받습니다.
할 수 없이 아랑은 혼자 무연에게로 발걸음을 옮기죠.

아마도 무연은 불사지체를 얻게 될 것입니다.
거의 확률 높은 스토리 전개라 보여지는데 이렇게 되면 예상하고 있는 무연의 최후보다는 신민아의 연기 변신에 더욱 포커스를 맞춰야 할 것 같습니다.
천방지축 왈가닥 처녀귀신에서 어느 정도 생전의 이서림의 성품을 지닌 아랑......이어 표독스럽던 무연의 영이 깃든 아랑으로의 연기 변신.
와! 생각만 해도 소름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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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진실의 종은 울리지 않았다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홍련과 대면을 하며 잃었던 기억을 찾은 아랑은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은오 어머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은오는 큰 충격에 빠지게 되죠.

허나, 옥황상제는 아랑이 죽음의 진실을 찾게 되면 진실의 종을 울려준다고 했지만 아직 진실의 종은 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랑이 찾은 기억 속의 죽음의 진실은 거짓이란 얘기죠.
홍련의 몸 속에 있는 무연이 진실의 답일 것입니다.

아랑은 죽음의 진실에 한발짝 다가선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이 문제의 답에 가까이 있는 주왈부터 대면하여 진실을 캐기 시작합니다.
주왈은 무연이 전직선녀였다는 것과 몸을 옮겨 다니며 살아왔다는 것, 그리고 몸의 주인이 원할때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주왈에게서 얻어낸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아랑은 무연을 다시 만날 각오를 하며 한편으로는 방울의 9대조 할머니를 초혼하여 무연에게서 은오 어머니를 되찾을 궁리를 모색합니다.


아랑은 방울의 9대조 할머니에게 무연을 몸에서 쫓아낼 방법이 없느냐고 묻죠.

9대조 할머니: "정확한건 아닌데 원래 몸주인 령이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게 몸에 들어오면 혼이 분리된다는 말이 있다. 그때 옥황상제의 칼로 찌르면 되는데 그게 또 아무나 찌르면 되는게 아니다."

9대조 할머니의 말은 '아랑사또전'에서 무연의 최후와 관련된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면서 방울의 이마를 탁 때리며 신이 보이고, 들리는 신기를 완전히 타통시켜주죠.

 

선무당으로써 은오의 능력을 부러워하고 자신도 그러한 능력을 갖게 해달라고 소원한 것이 이뤄진 셈입니다.
여기서 방울의 소원성취가 이뤄진 부분은 코믹스럽게 표현되긴 했지만 좀 비중을 두어 이야기하고픈게 있습니다.
일단 방울의 이러한 능력이 '아랑사또전'에서 아랑과 은오의 조력자로써 어떠한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 느껴집니다.

방울의 소원이 이뤄진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것이 이뤄진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리스 신화 속에서도 이처럼 불가능한 일이 실현되는 일화가 등장을 하죠.

'피그말리온이라는 왕은 자신이 조각한 여성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이를 지켜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의 소원을 들어주어 조각상을 인간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무언가에 대한 사람의 믿음, 기대, 예측이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이러한 효과를 피그말리온 효과가 하는데, 진심으로 어떠한 것을 소원하게 되면 아무리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라도 실현이 된다는데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피그말리온 효과처럼 불가능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진실된 소망과 신이 조력이 필요로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방울의 소원이 이뤄진 것처럼 '아랑사또전'의 각 캐릭터들이 소원하고 있는 것을 들여다보면 사랑과 자기희생과 같은 욕망들에 의해서는 소원하는 것이 이뤄지는 반면, 이에 반대되는 욕망들로는 결코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게 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아랑: 죽음의 진실 찾기→은오와의 사랑
은오: 어머니 찾기→아랑을 천국에 보내기→아랑과의 사랑

주왈: 밥 세끼 먹는 것→인간다운 삶에 대한 자각→아랑과의 사랑


무연: 무영과의 사랑→사랑을 할 수 있는 인간다운 삶→영생을 얻는 것


방울이 불가능한 소원을 성취한 맥락에서 각각의 주요 캐릭터가 자신이 뜻하는 바를 얻는다고 가정을 한다면, 아랑은 은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자기희생을 각오하면서 무연과 대면을 할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은오의 소원하는 바를 이뤄주기 위해서이기도 하며 죽음의 진실을 찾아 호랑이 굴 속으로 찾아 드는 것이죠.


문제는 아랑의 이러한 선택 때문에 무연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이라는 것입니다.
방울의 9대조 할머니의 말처럼 은오 어머니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모심잠'이란는 비녀의 용도가 그것이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랑이 무연을 만나러 가는 위험한 상황에서 지금까지 아랑을 보호해주던 은오가 최대감의 발고에 의해 옥에 갖히기 되었다는 점입니다.
'아랑사또전'의 사건의 정황상 최대감은 은오 어머니의 원수이고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먼저 제거해야 할 오래된 원한이 있기 때문에 최대감을 없애는 일이 먼저 진행이 될 것 같습니다.

아랑은 무연을 만나 어떤 담판을 지을까요?
'아랑사또전'이 숨겨 놓은 반전은 어떤 것일까요?
'아랑사또전'의 놀라운 반전은 지금부터 시작되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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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을 통한 인간 욕망에의 탐구



저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마음 속에 선과 악이 공존하며 이에 따라 마음 속이 천국도 될 수 있고, 지옥도 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아랑사또전'의 무연을 통해서 이러한 인간의 선과 악의 근원을 해석해보니 선과 악으로 구분되어지는 그 본질은 무연이 그토록 탐하던 인간의 욕망과 탐욕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무연이 본래는 선녀였다는 설정은 선인도 악인이 될 수 있으며, 악인도 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무연이 타락천사가 된 과정을 보면 성경에서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을 당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불교의 도를 깨달은 사람'을 부처라고 하는데, 모든 세속의 연을 끊고 감정의 고리마저 끊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득도의 경지라면 '아랑사또전'의 판타지적 세계관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가 신으로 묘사가 되어 있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 부분에서 무연은 신의 계급인 선녀에서 욕망을 지닌 타락천사로 되는 것은 신의 세계에도 엄연히 계급과 서열이 존재하며 반대로 인간도 신이 될 수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아랑사또전'의 세계관은 불교의 세계관과 상당히 유사하다 하겠습니다.
인간이었던 무연은 전생에 선업을 쌓아 천상의 선녀가 되고 이로 인해 윤회를 마칠 수도 있었지만, 욕망을 끊어내지 못하여 다시 윤회를 하는 세계로 돌아오게 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헌데,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무연이 이러한 자연의 순리를 무시하고 영생을 하기 위해서 육신을 갈아타는 방법을 알아버렸다는 것입니다.
천상에서 도망쳐나와 처음 육신을 가졌을 땐 금방 죽은 육신을 가진 듯 합니다.
허나, 이렇게 금방 혼이 떠난 육체를 얻기가 생각보다 쉽진 않았겠죠.
이후 산자의 육신을 빼앗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랑사또전'에서 혼과 혼이 뒤섞이면 악귀가 되는 것으로 묘사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연의 혼이 본격적으로 타락하기 시작한 것은 산자의 육신을 점유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혼의 뒤섞임으로 인해 무연의 혼도 악귀가 된 것이죠.
무연의 영생에서 욕망과 탐욕이 그러한 결과를 만들었다 하겠습니다.

무연의 타락은 '서유기'의 제천대성 손오공이 불덕을 쌓는 것과는 정반대가 되는 캐릭터라 할 수 있습니다.
원숭이의 왕 미후왕인 손오공이 삼장법사와 함께 천축국에 감으로써 하늘의 성인인 투전승불이 되는 것과는 전혀 반대의 길을 가고 있죠.

이렇듯 '아랑사또전'의 세계관과 불교의 세계관을 비교해보니 무척이나 흥미로운데요.
그렇다면 은오는 요괴로 변한 무연을 잡는 제천대성인 셈인가요.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이나 옥황상제 손바닥 안의 은오나 피차일반인 듯 하네요.
  

사랑의 희생양 아랑


'아랑사또전'은 불교·기독교·도교가 결합된 매우 독특한 세계관을 지닌 오컬트 장르의 드라마라 보여집니다.
완성도가 미흡하긴 하지만 이러한 색다른 시도만큼은 응원을 해줄만 하죠.

무연과는 반대로 죽음의 진실을 각성하게 된 아랑의 캐릭터는 사랑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캐릭터입니다.

주왈을 짝사랑한 이서림은 무연이 은오 어머니의 몸을 점유하게 되는 것을 목격하게 되죠.


혼이 뒤섞이면서 은오 어머니의 혼과 무연의 혼이 하나의 육신을 두고 쟁탈을 벌이는 과정에서 무연은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면서 은오 어머니의 몸을 칼로 찔러 자살하려고 합니다.
이를 말리던 주왈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자 이를 지켜보던 이서림이 불쑥 튀어나와 대신 칼을 맞아 죽게 되죠.
 

자신이 사랑하던 주왈을 구하기 위해 대신 목숨을 버린 자기희생적인 사랑입니다.
무연은 이서림의 기억을 지워 버립니다.
혹시라도 이서림이 저승에 가서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를 옥황상제나 염라대왕이 알게 될까 두려워하여 그런 것이겠죠.
 

 

아랑은 옥황상제의 계획을 어렴풋이 알아차리게 됩니다.
첫사랑이었던 주왈이 자신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말이죠.
죽음의 진실을 밝혀 내어 천상에 드는 일이 이렇게 괴로운 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겠죠.
죽음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아랑이 서글퍼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에 대한 잃어 버린 기억도 거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연과 아랑의 대비를 통해서 인간의 욕망,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 중 어느 것을 더 많이 꺼내 쓰느냐에 따라 무연이 될수도 아랑이 될수도 있다는 것이겠죠.
'아랑사또전'이 작품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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