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맥스'는 조지 밀러가 1979년에 만든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멜 깁슨의 데뷔작이자, 조지 밀러의 데뷔작이라 합니다.
작품의 흥행과 호평으로 '매드맥스'는 3편까지 만들어지게 되는데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매드맥스' 시리즈의 리부트 영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매드맥스2'(1981년)
'매드맥스3'(1985년)
*리부트란 용어의 의미는 기존 작품 인지도는 그대로 가져오면서 기존 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이야기로 재구성한 작품을 말합니다.
즉 시리즈의 연속성이 없어지고, 감독과 배우뿐 아니라 줄거리, 갈등관계 등이 다릅니다.
'매드맥스'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세계관은 같아 보입니다.
핵전쟁 이후의 암울한 미래상을 그리고 있는데요.
그렇지만 '매드맥스' 시리즈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스토리라인의 하나가 '복수'인 점과는 달리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구원'이 되었다는 점이 차이점의 하나로 보여집니다.
'매드맥스'에서 주인공인 멜 깁슨의 맥스와 '복수'는 조지 밀러가 연출한 펑키한 화면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정말 잘 어울렸는데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새로운 주인공인 톰 하디의 맥스는 '구원'이라는 새로운 미션을 잘 달성해냅니다만 어쩐지 '구원'이란 단어와 맥스는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조지 밀러도 이러한 사실을 인식했음인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분노의 도로라는 부제와 같이 복수와 일맥상통하는 분노의 이미지를 지닌 여전사인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를 내세워 기존의 멜 깁슨의 맥스가 지닌 이미지, 그리고 새로운 톰 하디의 맥스에게 부족해보이는 이미지를 덧칠해줍니다.
퓨리오사에게 집중해서 보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성공적인 리부트란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매드맥스' 시리즈의 주인공은 맥스라는 점에서 톰 하디의 맥스에 집중해서 보면 다소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멜 깁슨은 24달러에 '매드맥스' 출연을 결정하였다고 하는데요.
출연료 자체도 미쳤지만, 존재감도 정말 미쳤기 때문이죠.
'매드맥스' 속의 멜 깁슨은 정말 미친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그에 비해 톰 하디의 맥스는 주인공임에도 매우 안타까운 배역인 듯 합니다.
(일단 주인공임에도 대사 자체가 너무 없음...)
본론으로 돌아와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구원'을 외칩니다.
핵전쟁이 일어난 이들이 살고 있는 장소는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일 수 있는 지옥 그 자체이기 때문이죠.
그 지옥을 더욱 지옥답게 만들어주는 인물이 바로 임모탄입니다.
임모탄이 거느리고 있는 워보이들은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워보이들은 죽어가면서 모두 '발할라'를 외치는데요.
발할라는 북유럽신화에 등장하는 전사들만이 들 수 있는 일종의 천국(유토피아)입니다.
워보이들에게는 살아있다는 것이 더 큰 고통일 수 있는데요.
왜냐하면, 그들은 핵전쟁의 후유증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이죠.
어차피 그 후유증으로 인해서 단명을 하게 되어 있는 워보이들에게 죽음은 하나의 안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워보이들이 찾는 유토피아가 발할라라고 한다면, 퓨리오사가 찾는 유토피아는 풀이 자라고 가족과 함께 웃으면서 행복할 수 있는 평화로운 새 삶의 터전입니다.
풀이 자란다는 것은 물이 있다는 것이고, 핵물질에 오염되는 않는 곳이어야 하겠죠.
그렇지만 워보이와 마찬가지로 퓨리오사가 찾는 유토피아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디스토피아를 더욱 디스토피아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굳게 믿었던 희망이 없어지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없어진 완벽한 절망의 순간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만나게 될 때 인간은 구원을 찾게 됩니다.
복수를 주제로 한 영화는 넘치고도 넘치지만 구원이란 주제를 이와 같은 액션 영화에 넣은 영화는 참 보기 드물죠.
설사 넣는다 하더라도 설득력을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맙니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던 임모탄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를 열 퓨리오사의 시대가 오게 됩니다.
죽음의 땅이던 이 땅이 살아갈 만한 땅이 되고, 절망 뿐이던 이 곳에 희망의 새싹이 자라게 됩니다.
어쩌면 구원이란 그러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결말과 같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던 유토피아를 현실로 불러 들이는 그야말로 판타스틱한 일처럼 말이죠.
퓨리오사&맥스 굿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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