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8부작
원작: 네이버 웹툰 이원식, 꿀찬 <이제 곧 죽습니다>
출연: 서인국, 박소담, 김지훈
시청등급: 청소년 시청불가
티빙 오리지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이재라는 주인공이 지옥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12번의 삶과 죽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와 같이
인간의 삶과 죽음을 종교와
판타지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주인공의 외모가 '환생' 또는
'인생환승'이라는 작품의 설정을 통해
12번 바뀐다는 점에서
'뷰티 인사이드'와 유사한 장치를 지녔습니다.
또한,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측면과
이재가 경험하게 되는
여러 가지의 죽음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와의
접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재, 곧 죽습니다>는
'죽음이 인간의 도피처
혹은 안식처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탐구를
해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될 줄 알았던
최이재는 좌절을 하게 되면서
삶의 무게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주인공인 최이재는 삶이 괴로워서
죽음을 선택하게 되었으나,
그 죽음마저 도피처나
안식처가 될 수 없었지요.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도
죽음을 당하는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재, 곧 죽습니다>는
캐스팅이 굉장히 화려합니다.
이러한 캐스팅을 위해
굉장한 시간과 노력이 깃든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이재(서인국)
최이재는 이 작품에서
수없이 죽습니다.
그리고, 죽었던 만큼
다른 사람의 육신을 통해
환생을 하게 되지요.
이 작품은 이재가 죽으면서
환생하게 되는 인물과
그 인물을 통해
연결되는 스토리 구조가
굉장히 잘 짜여 있는 작품입니다.
죽음(박소담)
죽음(박소담)은 최이재에게
12명의 죽음을 맞이하게 될
사람의 육신에서
남은 생을 경험하게 되는 대신 또한
그 육체의 인물이 만약 살 수 있게 된다면
그 인생을 살게 해 주겠노라 제안을 합니다.
-1부 명대사-
죽음: "인간들은 참 대단해.
삶이 지옥같다 말하면서
그 지옥을 하루하루
잘 버티면서 살아가잖아.
그런데 진짜 지옥을 보니 어때?
1분이라도 견딜 자신 있어?"
박태우(김지훈)
금수저
박진태(최시원)
최이재가 첫 번째로 환생한 인물로
다이아몬드 수저 재벌 3세입니다.
죽음이 화가 난 이유는
인간의 죽음은
자신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인데
이재가 이를 부정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죽었던 이재는
다시 죽음을 맞이하기가 겁납니다.
좀 웃긴게, 방금 죽었던 이재가
다시 죽기 싫어서
살려고 발버둥치는 점은
인간의 간사한 본성일까요?
아니면 지옥을 살짝 맛보기로 경험한 후
지옥의 두려움을 알았기 때문일까요?
또한 죽음은 이재의 머리 속에
살아야 하는 의지가 생기게끔
박진태가 어떤 위치에 있는
인물인지를 자세하게 로딩시켜 줍니다.
인생을 역전시킬 기회라 여긴
이재는 살아나려고 발버둥칩니다.
송재섭(성훈)
이재는 12번의
인생환승을 경험하면서
12번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는 설정을 보건대,
이재의 죽음까지 합치면
총 13번의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셈입니다.
'13'이라는 숫자는
서양에서 불길한 숫자로 여기는데요.
하지만, 실제로 이재는
환승을 하기 위해
죽음으로부터 또 한 번의
죽음을 겪게 됩니다.
그러므로, 13번이 아니라
그 이상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겠지요.
이재는 세 번째 죽음 이후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인
송재섭으로 환승하게 됩니다.
두 번째 환생인 셈이죠.
권혁수(김강훈)
학폭 피해자.
권혁수는 최이재가 환생한 세 번째 인물입니다.
아마도 생존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인물인데,
아쉽게도 방심을 했던 탓에 그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네요.
이주훈(장승조)
청부살인업체의 비밀조직원.
최이재가 네 번째로 환생한 인물입니다.
조태상(이재욱)
격투기 선수 지망생인 다섯 번째 환생 인물.
여섯 번째는 생후 5개월 된 영아로 환생하게 됩니다.
장건우(이도현)
일곱 번째 환생 인물은 모델입니다.
정규철(김재욱)
여덟 번째 환생, 천재 화가.
안지형(오정세)
아홉 번째 환생, 형사
열 번째 환생은
노숙자(김원해)입니다.
-7회 명대사-
노숙자: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다른 몸으로 몇 번을 되살아나도
나로 살지 않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종국(김건호)
최이재가 열한 번째로
환생한 인물입니다.
이야기 초반에서
교통사고로 인해
사망한 남자입니다.
최이재는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한 삶을 살려고 했으나,
갑작스러운 해고 통지로
직장을 잃고 아내와 이혼하며
가족과의 연결을 끊고
모든 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후 최이재는 의욕을 잃고
죽고 싶어 하여 도로에 뛰어들어
박태우의 차에 치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과거의 최이재가 목격하고
도와주려다가 사망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이 일로 인해
최이재는 긴장하게 되어
면접에서 실패하고
결국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연속적으로 면접에서 떨어지며
인생이 망가지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 인물은 최이재에게 있어서
최악의 시작점이었습니다.
또한 최이재가 의식을 잃을 정도로
죽음을 갈망하던 상태에서
박태우와의 충돌로 인해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였고,
이 일로 인해 박태우는
마치 신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느껴져서
살인 본능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캐릭터는 원작에는 없던
오리지널 캐릭터로서,
이재 본인의 열한 번째 자살로 인해
죽음 이전과 죽음 이후에
이르는 환생 과정에서
지옥과 같은 경험을 겪게 되는
매우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지수(고윤정)
최이재의 여자친구.
개인적으로 '이재, 곧 죽습니다'는
이재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진행되고 있습니다.
죽음 뒤에는
이처럼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이 고스란히 남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자 하였지요.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어떻게 죽음으로
그 반대편의 삶에 대한 이유를
이렇게 그려낼 수 있었을까요?
정말 대단한 작품입니다.
연옥의 존재와 정화에 대하여
연옥은 무엇일까요?
연옥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죽어
영원한 구원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천국의 기쁨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정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 상태입니다.
'이재, 곧 죽습니다'에서는
죽음=정화 의식으로
표현이 되었다고 보입니다.
다음은 <연옥 영혼들의 놀라운 비밀>이라는 책에서
인터뷰 형식으로 나온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자살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런 영혼들을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
"지금까지 자살한 영혼 중에서
지옥에 떨어진
영혼을 만난 적은 없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영혼들은 종종 저에게 말합니다.
죄가 가장 많은 사람은
자살한 사람이 아니라
무관심했거나 비방을 퍼뜨린
그 주위의 사람들이라고요."
연옥은 저승에 있는
일종의 강제 수용소가 아니며,
인간에게 부여된 벌을
실증적인 방식으로
보속 하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연옥은 내적으로
필요한 과정을 거쳐
인간이 변모하기 위한 곳입니다.
요제프 라칭거(베네딕토 16세).
《Eschatologie》(국내 번역명 《종말론》) 한국어판 272쪽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사후세계'로 묘사되지만,
정확히 말하면 연옥은
'장소'가 아닌 '사건'입니다.
한자어 연옥(煉獄)의 '獄(감옥 옥)' 자로 인해
오해가 생길 수 있지만,
실제로는 라틴어 Purgatorium에서
단순히 '정화'라는 의미일 뿐입니다.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은총지위를 상실한 채 대죄를 가진
죽은 영혼은 지옥으로 가고,
은총지위를 보존하며
어떠한 죄나 잠벌 없이
죽은 영혼(성인)은
곧바로 천국으로 올라갑니다.
이 두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영혼,
즉 은총지위를 보존하고 죽었지만
아직 소죄와 잠벌이 남아 있는 영혼은
천국에 진입하기 전에
남아 있는 소죄와 잠벌에 대한
정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로 연옥입니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은
정화가 완료되면
천국으로 가게 되므로
구원이 확정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지옥에서 연옥으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옥은 영원한 곳입니다.
흔히 연옥의 고통을
지옥의 고통과 비교하여 언급하는데,
('이재, 곧 죽습니다'에서
이재가 겪는 고통은
지옥에 못지않은 고통입니다.)
실제로 성인들의 증언이나
교리적으로도 지옥의 고통과
비슷하거나 동등하다고 묘사됩니다.
그러나 지옥의 고통은
주로 하느님과의 영원한 단절,
즉 시간이 지나도 고통에서
벗어날 희망이 없다는
측면에서 비롯되는 반면,
연옥에서의 고통은
주로 언젠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연옥의 고통은
영원하지 않으며
극한적인 정도에
이르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공식 교리는 아니지만,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의 모습이
현실에서 관심을 끌기 위해
유령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강령술과 같은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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