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의도와는 역설적이기도 인간 존중이나 인간 존엄이 아닌 '혐오'를 그리고 있다고 개인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잉여인간으로 표현이 되는 단어는 기생충에 비하면 완곡하고 점잖은 표현에 속하죠.
'기생충'은 말 그대로 비하적인 단어이면서 직설적인 단어이기도 합니다.
혐오 발언이 많이 생성되는 현 시점에서 어떤 단어에 '충'이라는 글자를 붙여 수많은 '00충'들이 만들어지고 있는데요.
혐오를 나타내는 것으로 부족해서 '극혐'이라는 단어로 혐오감을 강조하기도 하죠.
이런 것은 모두 혐오에 기인합니다.
'기생충'은 기택네 가족에게 혐오의 이미지를 덧입히기 위해서 '냄새'를 사용하였습니다.
기택네 가족들에게는 그 냄새는 이미 익숙할대로 익숙해져서 자신들은 그 냄새를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 냄새는 '행주를 삶을 때 나는 냄새', '지하철에 타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냄새', '반지하에서 살기 때문에 나는 냄새' 등으로 표현이 됩니다.
가난의 냄새라고 할 수 있죠.
사람에게서 그러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을 때 굉장히 수치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일 것입니다.
혐오의 반작용은 또다른 혐오를 부를 뿐입니다.
벌레를 보면 놀라서 자지러지는 사람들이 있듯이 '기생충'에서도 그러한 모습들이 나타납니다.
상류층의 가진자들은 인간다운 삶을 누리면서 살지만, 하류층의 못 가진자들의 삶은 벌레와 다름 없습니다.
기택네는 상류층의 박 사장네에 들어가면서 기생하는 삶을 추구하려 하였으나 이미 박 사장네에 기생하고 있던 다른 사람인 문광으로 인해서 실패하고 맙니다.
하류층과 상류층의 기생 또는 공생 관계가 무너지게 되면 하류층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상류층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기생충'은 보여주고 있죠.
자신을 벌레 취급하는 상류층 사람들에게 기택은 혐오감과 수치심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혐오가 아닌 증오로 변질된 분노가 기택을 사로 잡았을 것입니다.
'기생충'의 결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되는데요.
기생충은 기생하는 하고 있는 동물과 현명하게 공생하는 방법을 찾지만, 인간은 감정을 느끼는 동물이기에 기생이 아닌 공멸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것이죠.
봉준호 감독이 추천하는 영화
'하녀'(1960), '충녀', '육식동물'
이동진 한줄평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깨끗하고 맑다)하게 직조(피륙 따위를 기계나 베틀로 짜는 일)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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