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가 낳은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
신승훈은 1990년 가요계의 르네상스 시대의 가요계 3 대장 중 한 명이다.
1990년대 가요계 3 대장은 서태지와 아이들, 신승훈, 김건모이다.
1990년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가요계에 화려하게 데뷔하여 30년 동안 꽃길만 걷고 있는 신승훈은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의 국민가수이다.
평론가 임진모는 신승훈에 대해서 "싱어송라이터를 논할 때 가장 위에 있어야 할 존재"라고 극찬을 하였으며, "발라드 영역에서 시장과 예술성을 다 잡은 최고의 가수"라고 덧붙였다.
최근의 말로 한 단어로 축약하여 표현하자면 완전 '사기캐'인 것이다.
남들은 이루기 힘든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다 이룬 가수가 신승훈인 것이다.
신승훈의 업적을 살펴보면 이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역대 최대 기록은 음반 판매량은 1700만 장이다.
14주 연속 1위 기록!
1집부터 10집까지 골든디스크 10회 연속 수상한 유일한 가수!
1990년대 1위를 가장 많이 한 싱어송라이터!
신승훈은 어릴 적부터 남달랐다.
노래를 좋아하였고, 가족 모두 노래를 잘한다고 한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생일 선물로 기타를 사줬는데, 기타를 잡는 순간 신승훈은 이 길이 나의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가수의 길을 반대하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충남대학교 경영학과에 들어간 신승훈은 통기타 창작곡 동아리에 들어가 통기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신승훈의 아르바이트 에피소드는 3박 4일을 밤새워 이야기해도 끝이 없는 네버엔딩 스토리인데, 이렇게 대전 내에서 이름을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져 가던 도중에 '별밤' 보조 MC와 게스트로 출연하게 된다.
그렇게 하다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였다.
하지만 신승훈의 생각과는 달리 가수의 꿈을 이루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기획사에 데모 테이프를 돌렸던 신승훈은 작사가 신재각에 눈에 띄었고, 김창환을 소개받은 후에야 가수 데뷔를 할 수 있었다.
1990년 '미소 속에 비친 그대', 1991년 '보이지 않는 사랑', 1993년 '널 사랑하니까', 4집 '그 후로 오랫동안', 1996년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6집 '지킬 수 없는 약속', 7집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등 내어놓은 곳마다 큰 사랑을 받게 된다.
신승훈은 현재 도로시컴퍼니라는 엔터테인먼트사를 차리고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
도로시컴퍼니 소속 가수로는 로시라는 가수가 있다.
로시는 신승훈이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완벽주의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승철은 신승훈에 대해 "눈이 너무 높다"라고 말하였다.
신승훈은 1966년생으로 54세의 나이이다.
신승훈이 누나라고 부르는 최화정은 1961년생으로 신승훈과는 5살 차이가 나는데, 신승훈이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출연을 하였던 날 최화정은 "집이 아깝다"며 또 다른 의미의 레전드임을 언급한 바 있다.
최화정: "예전에 신승훈 씨 집에 간 적이 있었다.
정말 너무 멋진 집이었고, 집이라기보다는 빌딩에 가까웠다.
천장이 유리로 되어 있어 별도 보이고 비가 오면 빗소리도 들렸다."
신승훈: "아직도 그대로 거기서 산다. 그때 누나가 신발을 신고 들어오려고 해서 말렸던 기억이 난다."
최화정: "집이 아깝다. 그때 여자만 있으면 딱이라고 얘기했었는데 아직도 혼자다. 아직도 재력을 유지한다는 얘기다. 역시 레전드다."
참고로 김건모는 1968년으로 신승훈과는 두 살 차이가 난다.
신승훈은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결혼을 안 하기로 결심을 한 것도 아닌 것 같다.
아직 레전드이기 때문에 내일이라도 맘에 드는 상대가 나타나면 당장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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