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리플리>가 학력위조 등으로 왜곡된 사회구조를 꼬집은 것은 장명훈이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 중에서 언뜻 보인 듯 합니다. 그 후로 좀 더 면밀하게 파고드는 날카로운 시선은 없었습니다. 그동안 보여준 작가나 연출의 역량으로 보면 충분히 이를 건드릴 수 있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며 마지막회가 종영이 되었습니다.
문제 제기만 해놓고 어떠한 결론도 내지 않은 채 그냥 막을 내려서 매우 섭섭하게 생각합니다. 어차피 '신정아'나 '타블로'에 의해 이미 큰 이슈가 되었던 문제인만큼 다시금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비켜갔다고 해석할 수 밖에는 없겠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소셜테이너 금지법'이라든가 '삼보일퍽', '파워블로거 논란' 등에 대한 문제 등과 맞물려 할 말을 할 수 없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연장선상에서 예전에 고현정, 권상우가 주연을 맡았던 <대물>처럼 정치적인 외압이나 음모가 있다고 본다면 <미스리플리>의 이 얼토당토 않은 결말은 어쩔 수 없이 강요당한 결말로 보여집니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정부하에서 이런 일들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미스리플리>의 예상치 못한 결말을 최대한 양보해서 이해를 하자면 상기와 같습니다. 만약 이런 이유가 아니라고 한다면 <미스리플리>는 기획의도에 반하는 상당히 비겁한 드라마였고, 시청자를 기만한 드라마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재밌게 시청하였던 드라마가 이런 드라마가 아니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결말을 보면서 장하준 교수님이 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친필 서명 중에서 이런 글귀가 떠오르더군요.
'단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는 계속 발전합니다. 그러니 당장 이뤄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대안이 무엇인가를 찾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비판이 없는 사회는 발전을 하지 못하고 도태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판을 막는 사회는 발전하고 성장하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은 시간 낭비요 에너지 낭비이겠지만, 건전한 비판은 필요로 하다고 생각합니다. 할 말은 하고 사는 사회가 한시라도 빨리 오길 바랍니다. 그것이 <미스리플리>가 꿈꿨던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뒤바뀐 운명
전 회의 리뷰에서도 밝혔지만 히라야마의 비중이 커지면서 장명훈과 히라야마의 운명도 뒤바뀐 듯 합니다. 총대를 메고 자신의 탓이라며 죗값을 치르겠다는 장명훈...
만약 히라야마의 비중이 커지지 않고 역할 변경이 없었더라면 장명훈 대신 혹은 장미리 대신 죗값을 치뤄야 할 인물은 당연히 히라야마이죠. 히라야마 같은 악인이 이렇게 미꾸라지처럼 피해 나가니 정말 화가 나네요. 상징적으로 보자면 히라야마는 정말 현실에서 법망을 피해 다니는 사회적 특권층의 행동양식을 보는 것 같아서 약이 오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장미리가 검찰에서 자백을 해서 장명훈이 총대를 메는 일은 없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어머니는 어머니다
이화는 장미리가 바다에 빠지면서 머리에 충격을 받아 혼수상태에 있자 간병을 자처합니다. 장미리가 깨어나자 이화는 장미리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빕니다. 장미리는 마음의 앙금을 다 쏟아내며 이화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지요. 하지만, 결국에는 장미리는 죗값을 치르고 난 후 이화에게 '사랑한다'면서 그녀를 용서합니다. 유현이 말했듯이 좋다고, 나쁘다고 바꿀 수 있는 것이 어머니가 아니죠.
인연이라는 것이 없는 것 같지만, 가족이나 부부를 보게 되면 인연이라는 것이 있긴 있는 것 같습니다. 불교에서 보면 부부의 인연은 8천겁의 세월이 흘러야 맺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유현과 장미리의 인연은 부부의 인연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유현이 첫 눈에 장미리에 반했고, 그녀에게 강하게 이끌렸던 것도 인연이지만 맺어지지 못할 인연이었던 것이죠. 윤회를 믿는다면 유현과 장미리의 이번 생의 인연은 다음 생을 위한 밑거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사랑이 맺어지지는 못했지만 열린 결말을 내림으로써 시청자에게 그들의 사랑이 맺어질 일말의 가능성을 남겨두었다고도 보여집니다.
댓글 영역